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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K/ 제 3 문화 아이들/한글

다른 문화를 익히는 혼돈 그리고 그로 인한 수치심




 다른 문화권으로 옮겨가는 것의 과정에서 모두가 겪게되는 가장 큰 부분은 바로 [규칙의 변화]다.




 사람 사는 모양이 다 비슷하다지만, 문명이 발전하면서 인간이란 존재는 각기 다른 규칙들을 만들어갔다. 인간이 만들어냈지만 어느새 규칙이 먼저고 인간이 그에 맞춰가는 입장이 되었다. 보통은 나면서 일정한 규칙을 익히고 그 문화에 맞는 어른으로 성장을 한다. 문화 마다 그것을 익히는 과정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문화 규칙은 '수치'를 통해 배우게 된다.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부모가 체벌을 한다든지, 어긋나는 행동을 한 사람을 향해 수치심이 느껴지는 반응으로 간접 학습을 시키거나, 또래 사이에서 서로 약올리거나 창피를 줌으로 그 문화의 구성원으로서 해야할 행동을 자연스레 익히게 한다.




 그런 과정을 겪은 아이가 어른이 된다면 그 문화 규칙이 체화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때, 만약 성인이 된 이 아이가 외국, 혹은 다른 문화권으로 나가게 된다면?



 우선은, 문화 충격과 충돌이 일어난다. 그 나라의 규칙을 알게되는 시행착오를 겪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에 대한 혼란을 느끼진 않는다. 주변 세계에 대한 혼돈 또한 없다. 그저, "여긴 이렇구나"의 선에서 주체적으로 그 문화를 익힐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아이의 경우 많이 다르다.


 아이란, 성인이 되기 전의 당계이자 성장이 덜 된, 자아가 온전히 이루어지기 전의 상태이다. 아직 주변의 것으로 학습을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규칙이 생길 때, 아이는 주체적으로 "아, 여긴 이렇구나"하고 학습을 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화 시켜버린다. 어느새 그 규칙은 아이를 구성하는 한 조각이 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많은 TCK들은 두가지 이상의 문화를 경험하거나, 넘나드는 삶을 살아간다. 어느정도 성장한 아이라면 이제 그 상황을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알겠지만, 어린 아이의 경우 어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혼란을 겪게 된다. 저쪽 문화에서는 어른이랑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해야 바른 아이였는데, 이쪽에서는 무례하고 발칙한 아이가 되어버리는 경우처럼, 극단적인 상황을 겪기도 한다. 대부분, 이로 인한 혼란은 어른이나 주위 사회의 무지에 의해 가중된다.




 관념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고, 린지가 겪은 일화 두 개를 소개해보겠다.





 첫번째 이야기_



 린지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완벽한 미국식 체계속에 있다가 중간에 영국인 학교로 옮겨갔다. 학교에 간지 셋째 날이었다.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무언가를 할 때 철저히 선생에게 정중하게 허락을 받고 해야했다. 게다가 영어도 미국식 영어를 사용했다. 어쨌든,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에 밖에 있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져 선생님에게 가서 정중히 허락을 구했다.



 "May I go to the bathroom?"



 '밖'의 활동을 하는 시간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거기다 선생님의 감시 밖의 영역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이 그래야한다고 생각을 했다.



 서있던 남자선생 둘이 서로를 보고 피식 웃더니, 아프리카인 선생이 잔뜩 수치심을 주었다. 놀리긴 놀리는 것이었지만, 나의 발음과 행동으로 미국식 생활이 티가 나 분명 수치심을 느낄 만하도록 이야기를 했다.



 "Bathroom? To take a bath?"(목욕실? 목욕하러 가게?)

 샤워하는 시늉을하며 잔뜩 웃었다. 새로 전학 간 학교라 안그래도 낯선데, 거대한 어른 두명이 그런식으로 내려다보면 상당히 위협적이다. 나는 직접적으로 '소변을 보고싶다'고 말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며, 화장실이란 곳에 대한 다른 단어를 알 질 못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한참을 그러고 놀리다가 선생님이 ,


 학교에는 "Bathroom목욕실"은 없고 "Toilet" 혹은 "Loo"가 있다고. 그리고 화장실 정도는 알아서 가야지 일일이 보고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렇게 큰 사건은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그 흑인 선생님의 전반적인 태도와 그 상황속에서 린지는 심한 수치심을 느꼈다.
 



( 린지의 인생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흑인은 이 선생님과 외국에 처음 나갔을 때 린지를 괴롭혔던 상급생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린지는 인종주의가 아님에도 흑인을 마주하면 잔뜩 얼어버리고 머리가 하얘진다.)






 두 번째 이야기_


 이건 아주 오랫동안 밝히지 않았던 아주아주 숨겨둔 이야기지만, 여기서 풀어보겠다. 린지는 어릴적 하와이에 살았었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아이답게, '훌라'라는 전통춤을 배웠다. 반에서 어린 축에 속하면서도 우등생으로 발표회 때 앞줄 가운데쪽에 설 수 있을 만큼, 재미도 붙이고 자부심도 있었다. 당연한 것이, 어린 린지의 정체성 속에 하와이라는 땅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하와이인'으로서 그 춤을 잘 춘다는 것은 굉장힌 자랑이었다. 어른들이 있는 곳이라면, 재롱으로 나의 춤을 보고싶어했으며 나는 자부심을 갖고 훌라를 췄다.

 마지막 발표회날의 액자사진은 훈장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몇년이 흐를렀다. 그 사이 린지의 가족은 하와이를 벗어나 유럽에서 살고 있었다.
 

 거실에 그 발표회 사진이 있고 , 훤히 사정들을 아는터라 어른들은 내게 여전히 '훌라'를 보여달라고 했다. 좀 녹슬기야했지만,
춤을 출 기회가 있으면 여전히 기쁘게 보여드렸다. 그러던 어느날. 손님들이 집으로 돌아갔고, 린지는 그날 어김없이 훌라를 추었었다.


 "어디 그렇게 어른들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어 창피스럽게, 이제 하지마."

 엄마의 말이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내가 한 일이 부끄러운 일이었다며 수치심을 주었다.



 자랑스러운 하와이의 혼이 담긴 그 춤은 그 순간 한낱 '엉덩이춤'으로 전락해버렸고, 자부심이 깃든 그 사위는 '창피스러운 짓'이 되어버렸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이후로 린지는 훌라를 추지 않았다.


 훌라 그저 추지 않은 것이 아니라, 훌라를 췄다는 그 사실 자체가 너무 부끄러웠다. 어느 정도였냐면, '하와이에 살았다'라면 농담식으로 '훌라같은거 췄어?'라고 할까봐 그 이야기도 안 꺼냈다. 행여 하와이에 살았다 할지라도 , 훌라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엄마가 거실에 내놓은 춤추는 사진을 전부 방으로 가져들어가 옷장 깊숙히 보이지 않는 곳에 넣어두었다.

 한술 더 떠, 하와이를 벗어난 곳에서 '훌라'라는 신성한 춤에 대한 시선이 린지의 그 부끄러움을 가중시켰다.


 그 때 받은 수치심이 너무 강해 아직도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훌라라는 춤은 '야한 춤'이 아니라, '엉덩이'가 아니라, 정신이요 혼이요 아름다운 하와이고 [나의 일부]였다. 그런데 그것이, 한순간에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


 

 린지는 TCK로서 다른 문화권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새로운 규칙을 받아들이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규칙을 버려야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대개 엄청난 수치심을 겪게 된다. "수치심 쯤이야, 다 커가는 과정이야." 흔히 어른들은 이렇게 말하지도 모르겠지만, TCK들이 겪는 수치심은 약간의 잘못, 틀림으로써 받는 수치심이 아니라, 분명 옳은 일을 했는데, 그 옳은 일이 "여기"서는 옳지 않다는 충격에서 강타하는 좀 더 근원적인 수치심이다.


 심지어 존재 자체에 대한 수치심이 되어버리고, 아이의 자아 자체에 타격을 주게 되기도 한다. 이런 사건으로 인해 심하게 소심해진다든지, 지나칠 정도로 내성적이 되고, 사람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린지 정도면 괜찮은데, 더욱 잦은 이동과 잔인한(?) 주위 환경으로 더 강한 '수치심'을 감내야하는 아동 중에는 이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 수가 없어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 행동에 언제 수치심이 날아들지 모르는데, 맘편히 사람 앞에 나서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TCK들을 양육하는 부모나 교사들은 이 점을 알고, 수치심을 이요한 교육보다는 "여긴 이래,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돼"식으로 조곤조곤 설명을 해주었으면 한다. 아이가 '잘못' 행동했을 때도, 혼을 내기보단 혹시 이것이 가치관이나 문화 경험으로 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아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눈높이를 맞춰준다면, TCK자녀는 자신감있고 자연스럽게 문화를 받아들 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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