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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ld/한글

혜원 신윤복, 「미인도」내멋대로 감상하기 [상편]







 혜원의 미인도. 워낙 오래전에 마주친 그림이라, 첫 감상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만해도 내 눈은 루브르의 벽을 장식할 법한 서양화에만 익숙해져 있었는데, 「미인도」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모습에 실망했던 건 기억이 난다.
 


 사실 그렇다. 나 같은 경우에는 한국과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는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 현실은 실망스러웠다.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는 가장 끔찍하다 배웠던 '영국사'보다도 재미없고 찌질했다. 침입이나 당하고 망하기나 하고, 그나마 삼국시대 때 좀 괜찮았다고 얘기해주더니 그건 금방 끝나고, 중국한테 사대할줄 밖에 모르는 짜증나는 이야기들만 가득 나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관절 누가! '그딴 역사'가 있는 나라를 사랑하겠나. 학교에서 배운 한국이란 나라는 그랬다.



 예능 교과서의 배치도 마찬가지였다. 이 부분은 다음에 언젠가 자세히 열폭해 보도록 하고,




 무튼, 그런 이유로. 설명도 되지않고, 웅장하고 역동적인 서양의 미술품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한국화를 보며 자괴감 비슷한 것도 느꼈다. 문화란 그 나라의 기상과 자부심, 그리고 수준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라 이런 빈약한 '호박'을 미인이라 칭해야했던 선조들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어떠한 계기로 신윤복에 흠뻑 빠져들었고, 그러부터 몇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옛그림들을 보는 나름의 눈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처음 뜯어본 그림이,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다.












 우리의 옛그림을 보는 방식은 오른쪽 윗 귀퉁이부터 ↙이렇게 내려가는 형식이다.




 오주석님의 책에 의하면 그렇다. 맞다. 원래 동아시아의 글씨가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여지는 것이라, 그림을 즐기는 양반들도 시선이 그렇게 움직였을 것이다. 그림은, 당연히 그 시선에 맞게 그려지고,















 우선 찬찬히 슬로우 모션으로 살펴보면, 풍성한 트레머리가 보이고, 초롬한 얼굴, 가느다란 목, 여린 어깨가 눈에 들어온다. 



 여인이다.


 여인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씩 용기를 내어 나아가보면, 작달마한 손이 옷고름과 노리개에 엉켜있고, 드러날듯 말듯한 여린가슴과 잘록한 허리에 눈을 둘곳을 잃는다. 그리고 드디어 풍성한 치마가 왠지 손을 내밀고 싶게 한다. 들썩이며 쪽빛 치마 아래로 삐져나온 앙증맞은 발이 보인다.




 다시 눈길이 간다. 아름다운 여인이다.


 어느새 관객의 눈은 장난스러운 손에 고정되어있다. 그저 노리개를 가지고 노는 것 뿐인가, 아니면, 아슬하게 걸쳐있는 저 옷고름을 풀어내릴 것인가. 긴장을 하다 '아차' 정신차려야지, 하고 시선을 거두어들이려는데, 저고리 아래로 드리워진 연지빛 옷고름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요즘이야 워낙 하의실종자들과 앙트와네트 상의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이런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겠지만, 당시의 사대부들의 마음을 생각해봐라. 여인의 품에서 흘러나온 붉을 끄나풀은 충분히 자극적이었을 것이다.

 


 좀 더주의를 기울여보면, 여인의 어깨가 불균형하다. 이건 비율이 안 맞는게 아니라, 오른쪽을 살짝 뒤로 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보는이의 상상을 유도한다. 어찌보면 앙탈을 부리는 걸 수도 있고, 수줍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언제든 여인이 그대로 돌아서 화면밖으로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안타까움까지 느끼게한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없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상태로 보이기도 한다. 기억하자. 이 그림을 보는 것은 사내들이다.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여인이라니, 얼마나 두렵고 애가 타는가.





 신윤복, 이 형님은 요즘 세상에 태어났었다면 여성 패션디자이너가 되든지, 천채 패션 화보작가가 되었든지, 아무튼 , 아름다운 여인네들이 득실대는 곳의 유명인사가 되었을 것이다. 너무 잘 알려진 것처럼, 그의 그림은 당대의 미의 정석을 화폭에 담아주었다. 복식학자들에겐 참 고마운 인물일 것이다.

 완벽한 상빈하후의 실루엣과, 그 균형을 완성하는 큰 트레머리는 정말 매력적이다. 뭐, 다른 아저씨들이 그린 여인네의 치맛자락도 가끔 보지만, 이 형님처럼 맛깔나고 아름답게 표현한 건 보지 못했다. 한껏 부풀어 오른 치맛폭과 맨질맨질하고 새까만 색이 탐스러운 트레머리는, 볼 수록 감탄사를 자아낸다.




  
 의상으로 넘어가버린 지금, 현대인으로선 바로 알아채기 힘든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잘 생각해보아라. 조선은 상공업이 발달되지 않은 나라였다. 마님의 가체 하나가 집채 정도의 가격을 하던 시절이다. 신윤복이란 이름을 들어보았다면 이미 그가 기생들을 그렸다는 것을 알고 있을테고, 그럼 이 기생이, 가발도 사고, 노리개도 사고... 어쨌든 보기좋게 치장할 정도의 재력은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도가 되려면? 그러니까, 천민 출신의 여인이 이 정도의 재력을 갖출려면 답은 하나뿐이다. 상당히 유명한 기녀였을 것이고 재주든 아름다움이든 받혀주니까 양반들이 돈다발을 던져줬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리 생겼다 할지라도 당대에는 미인이 맞았을 것이다. 린지도 저 시절에 태어났으면 한 가닥했을련지도 모르겠다. 아쉬운대로 서방세계 투어나 갈까-





 까칠한 고발쟁이었던 윤복님은, 어쩌면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시 양반들의 꼬라지를 쌍심지 켜놓고 지켜보던 이 화가는 여기서도 독설을 뿜고 있을 수도 있다.

 천출의 여인이, 노리개도 달고, 탐스럽게 머리까지 올렸으니, 양반들이 기방 곳곳에 전두를 쥐어주고 다니는 세상이다. 라고 말을 하는 걸지도. 뭐 , 그렇다기에는 미인도에 나오는 여인이 좀 수수하긴 하다. 하지만, 이미 한 여인을 주인공으로한 저런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충분히 위화감이 넘친다. 풍속도를 보여주던 다른 그림보다 더한 음모가 느껴진다.
 '바람의 화원'이라는 소설과 드라마의 모티브가 되었던 '윤복이형 남장여자설'이 나올법하게, 이 천재는, 여자를 하나의 대상이자, [인격체]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것도, 아무리 대가댁 마님을 그리는데 사회적 제약이 있었다 쳐도, 다른 누구도 아닌 기생을 [사람]이자 (남성중심)'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만들어놓았다.



 어쩌면 굉장히 탁월한 선택이었다. 먹고살기 바쁜 논밭 아낙네들이나, '집안'이 되어버린 양반댁 여인들에게는 개인과 인격에 대한 의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충족시키는 것은 역시 자유로운 삶을 즐기고, 남성과 공식적으로 동석 할 수 있는 기생들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한국의 기생들은 일반 창녀들과 다르지 않았던가. 재주만 뽐내는 예기와, 시화로 양반들의 기를 죽이는 지성, 심지어 몸파는 천출 주제에 수절까지 하는 것이 우리네의 기녀들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음모론은 방바닥 아래에 숨겨두고,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면 멋드러진 트레머리 아래로 동백기름과 참빗으로 곱게 빗은 정갈한 앞머리가 보인다. 이것은 표면적인 앞모습일 뿐이다. 신윤복은 여기서 여인의 에로티즘을 극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훌륭하고 섬세한 장치를 하나 더 발견한다. 단정한 앞머리 보다는 왠지 시선이 자꾸만 다른 곳으로 가려한다. 여인의 귀 뒤로 나풀대는 잔머리, 그 보드라운 촉감은 새하얀 목덜미 위까지 보송하다.  그렇게, 시선은 다시 여인의 목에 머문다. 이 뽀얗고 여성스러운 신체부위는, 당시 노출이 허용되었던 몇 안되는 곳이다. 그 살결이 얼마나 보드라울까, 남성의 것과는 다른 저 곡선이 얼마나 눈부신가. 하나씩 살펴갈 수록 참 깨알같이 아름답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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