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5.22 대한제국의 의민태자(영친왕), 역사에 빼앗긴 인생과, 그의 정체성 I(8)
  2. 2011.02.12 추성훈 “난 한국과 일본의 한가운데 서 있다”에 달린 악플들, [너]와 [나]의 경계(19)

대한제국의 의민태자(영친왕), 역사에 빼앗긴 인생과, 그의 정체성 I






 몇달전에 이은, 또는 영친왕으로 익숙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의민태자에 대해 약간 알게 되었다. 오늘, 또 우연한 계기로, 지나가다 틀게된 [역사 스페셜]의 내용이 바로 그에 관한 것이었다.



 익숙하든 안하든, 린지는 이후부터는 그의 올바른 호칭인 [의민태자]로 칭할 것이다.



 또한,

 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방송에서도 대놓고 끄집어내는 [경계인]이라는 말 대신,
TCK로서의 관점으로 그에 대해 부족한 글을 쓰고자 한다.

















 원래 의민태자에 대한 포스팅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많이 일러졌다.




 그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의민태자는 조선의 마지막 세자이고, 고종황제와 순헌황귀비 엄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덧붙이자면 고종이 가장 사랑하던 아들이었다고 한다.




 영친왕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의민태자는 흔히, 조선왕조의 세자이면서 동시에 일본 황실의 일원이었던 신분의 모호함이 낳은 '불편한' 인물로 자리 잡고있다. 지금의 우리는 정서적으로도 납득을 하고 있지만, 그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인생을 살았다. 안타깝게도, 당시의 고조된 조선의 민심속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의민태자가 일본으로 '유학'이라 칭해진 볼모 생활을 하게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다른 포스팅에서 밝혔지만, (한국인이, 한국인으로, 한국에 대해 알아야할 이야기_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고종황제는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을 가졌던(오늘날의 역사는 '자질'이라는 단어로 한정하게 만든다.) 강적이었기 때문에 일본측에서 강제퇴위를 진행했다.


 이 때의 비화를 잠시 이야기하자면, 고종황제의 퇴위식이자 순종황제의 즉위식에, 정작 두 사람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외신들에 의해 자국 1면에 그림을 동반한 기사도 났는데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당시 물러날 이유가 없는 고종은 물론이고, 순종 또한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하며 함께 궁에 있었다고 한다.
 주인공 당사자들이 없는데 식이 진행되겠느냐- 뭐. 당시 일제였다. 무엇인들 못하랴. 고종과 순종의 자리는 [연기자]들로 체워졌고, '퇴위식'은 공식적으로 무사히 마쳤다.








 이에 대해, 고종은 교과서에도 알려져있는 [헤이그 밀사] 사건을 일으켰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이로 인해 일본의 압력만 높아졌다. 이 상황에서, 어차피 불임이었던 순종에게 후사가 없었으니(뛰어난 서예가였던 그의 흐트러진 글씨로 순종황제는 당시 일본측에서 수랏간을 통해 매일 아침 마시던 커피에 타넣은 대량의 아편 사건으로 일상 생활조차 힘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가장 사랑했던 아들, 이은을 [황태자]로 책봉했다. 순종과의 관계를 따지자면 [황태제]란 표현이 맞는데, 고종황제의 아들인 이은에게 굳이 [황태자]란 이름을 준 것은,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황제는 고종 자신이라는 의미를 담은 정치적 승부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의 선택이 썩 현명했다고 볼 수는 없다. 황제로 앉아 있는 순종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고, 급박한 정치적인 상황속에서 31세의 든든한 [이강]에게 태제든 태자이든 , 다음을 책임질 타이틀을 줬어야했는데, 개인적인 총애로 이은을 선택했고, 이것은 사랑하지 않으니만 못했을 저주가 되어버렸다.





 멀쩡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의 나라 군주를 두고서 순종의 사인을 위조해가며 조선을 '통치'하고, 외교문서도 조작해 해외에 뿌린 당시 일본과 조선총독부의 창의적인 발상으로 인해, 대한제국은 황태자를 꼼짝없이 빼앗기고 말았다.




 세자교육에 끔찍한 조선왕실의 전통을 빌미 삼아 ['낙후 된' 조선의 교육이 아닌, 선진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의 최고 교육을 시켜주겠다.]는 명목하에 , 반박 할 여지도 없이, 의민태자는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게 되고 말았다.










 당시 대부를 맡아 그를 데려간 사람은 다름 아닌, 이토 히로부미였다.



 일본의 목적은, 어린나이에 대한제국의 후계자를 데려가 '일본물'을 들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한 친밀감을 최대화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부였는지, 그를 '보살핀' 이토 히로부미는 극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에서 우러난 행실이었다고 믿기는 힘들다. 정복당한 부족 족장의 머리를 들고 행진을 하듯, 기모노를 입힌 의민태자를 옆에 두고 찍은 사진이 대외홍보용으로 뿌려졌다.




 그렇게 해서, 이은은 세자가 된지 일년도 채 되기 전에 1907년,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1살이었고, 그의 곁에는 동궁대부였던 고의경, 시종무관 조동윤, 그리고 끼어서 가게된 외사촌 엄주명만이 있었다.



 일본측에서는 유학이라 우겼지만, 조선황실의 가족들이 아무리 간청을 해도 방학 때 조차 귀국을 할 수 없었던 의민태자는 명실상부한 '볼모'의 처지였다.











 그의 어머니이신 엄씨가 1911년 병사했을 때도, 장례를 위해서 어렵게 4년만에 귀국을 한 그는 '전염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다가가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정서를 이해하면 '그럴 수도 있지'할 문제가 아니다. 오래된 무덤조차 실제 살아있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해 찾아가고 '대화'까지 하는 한국의 정서상, 죽은 사람이라도 '시체'가 아니다. 그 사람 자체로 인식을 했을 것이다. 하물며, 4년만에- 자식이 보고싶어 홧병으로 돌아가셨을 어머니를 앞에 두고 다가가지도 못하게 했다니. 심성을 보았을 때 효심이 지극했을 의민태자에게는 어머니가 더 이상 '움직이지'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혹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7년 뒤, 엄연히 태자였던 의민은, 그를 너무도 아꼈던 아버지 고종의 임종마저 지키지 못하고 떠나보내야했다.







 의민태자의 외로움은 단순 [경계인]이란 단어로 그를 표현한다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더 많은 시간과 실제적인 인생을 보낸 곳이 일본인데, 겨우 어린아이로 떠났던 조선에 대해 사무치게 그리워했을까?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제 린지는 다시 그를 TCK라는 울타리 속의 사람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경계]에 서있는 사람이 아닌, 문화와 문화 사이를 오가며, 그 사이에서 벌어진 새로운 문화에 발을 딛고 있던 사람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하는 것은, TCK들이 '국경'에 서서 이쪽과 저쪽에 발을 자유자재로 걸치는 '박쥐'가 아니라는 점이다. 100%옳은 이미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TCK들이 고국을 떠난적이 없는 비TCK들이 이해하기 힘든 강도의 애국심을 품는다. 




 린지의 TCK게시판의 부제가 [허공]이니 만큼, 그곳은 보이지 않는 땅이고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허공이라는 것은, 그와 동시에 모든 곳에 펼쳐져 있다.





 이런 표현이, 의민태자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는 '혼자'가 아니다.










 전편으로 짧게 끊어 마치면서_



 이방자 여사(정식명칭: 의민태자비)의 <세월이여 왕조여> 내용중에,
의민태자의 책상에 놓인 이상한 돌조각에 대해 묻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그 내용을 옮겨본다.



전하께서는 일본에 와 너무 그리운 나머지, 고종황제께 10살 때부터 일본에 가기 위한 준비기간 동안 있던 낙선재 뜰의 조약돌 몇 개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하셨다고 한다. 맨질맨질 해져버릴 정도로 닳아버린 조약돌은 향수와 외로움을 달래주던 벗이자 장난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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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플파란 2011.05.13 06:44 address edit & delete reply

    의민태자는 영친왕 이은이 죽은 뒤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정한 시호입니다..오랜만에 영친왕의 글을 읽어보네요... 영친왕도 그렇고, 덕혜옹주도 그렇고... 2005년에 작고한 영친왕의 아들인 이구씨도 그렇고... 모두들 힘든 삶을 살았고... 기구한 삶을 살다가 삶을 마친 인물이지요.. 이젠.. 기억의 저편으로 살아졌고... 점점.. 잊혀지고 있지만... 이젠.. 홍유릉 구역에서 평안히 지내고 있을지...홍유릉에 가면.. 영원이란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영친왕이은과 이방자 여사의 묘입니다. 그 뒤엔 덕혜옹주와 의친왕 그리고... 그 뒤에는 이구씨의 묘가 있습니다..

    • Lynzi Cericole 2011.05.13 07:1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오랜만이네요ㅎ

      원래 왕명이나 태자 이름은 나중에 지어지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영친왕은 일본쪽에서 한국의 국격을 낮추기 위해 만든 명칭이라더군요. 대한제국은 엄연히 황제의 나라라고 우리가 공표를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정한 의민태자라는 호칭이 맞다고 책에 나와있었네요ㅎ 그렇게 부르고 싶게 되었습니다.

      후... 귀여운 막내딸 같은 느낌히 선한 덕혜옹주의 사진들을 보며 가슴이 아픕니다.

      의민태자에 관한 글을 읽고, 안 그래도 "한번 '찾아뵙'자"라는 기분이 절로 들어요. 스스로에게 잠들어 있던 이런 '한국적인 의식'에도 적잖게 놀랐더라지요. 이미 떠나간 사람인데,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은 어리석은 것일까요ㅎ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 이바구™ - 2011.05.13 14:37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어제 역사스페샬에서 영친왕의 불행했던 과거를 봤습니다.
    그의 불행했던 위치에 가슴이 아프더군요.

    • Lynzi Cericole 2011.05.13 15:5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불행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대표로' 받아서 더 안타까운 것 같아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3. 2011.05.13 15:18 address edit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Lynzi Cericole 2011.05.13 15:54 신고 address edit & delete

      그렇죠...

      어처구니없게 당한 부분에 대해서는 조선왕조만한 경우도 드문것 같아요. 물론, 세도정치로 진작에 무너졌을 왕조였지만, 과거의 성군들에 대한 존경으로 백성들이 유지시켰죠.

      차라리 백성들이 일으킨 일이라면 '순리'라고 생각 할텐데...

      반복되지 않도록 과거를 잘 알아보고 노력을 해야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4. 여울해달 2011.05.13 17:2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어제 이걸 보기전까지는 역사스페셜이 종방된 줄 알았어요.^.^
    여하튼 어제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돌더군요.
    누구에게도 자신의 아픔을 털어 놓을 수 없는 삶을 살았던 망국의 황태자 이야기...
    일본왕족에 준하는 대접을 받으며 몸은 편했을지 몰라도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졌을거라 생각합니다.
    당시 조선백성들도 그렇지만 다른 누구보다 조선의 처지와 왕실의 무능함에 피눈물을 흘렸던 것은 아마도 영친왕 자신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 Lynzi Cericole 2011.05.13 23:57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성품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을거에요...

      다음 포스팅에 이어하려했지만, 일본에서 자리 잡으면서는 사비로 자신의 나라를 위했죠. 전부 소용이 없게되었지만요...
      그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이 너무 끔찍해서 울분을 토하게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는 것 또한 씁쓸해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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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훈 “난 한국과 일본의 한가운데 서 있다”에 달린 악플들, [너]와 [나]의 경계





  나는 재일교포, 혹은 재미교포 출신에 대한 기사들을 볼 때마다 착잡한 마음을 다스리는데 애를 먹는다.

 
 대개 ‘차별’을 겪은 내용과 그 아래 달리는 악플들 때문이다. 그것 외에도, 나는 단어를 찾지 못하는 그들이 자신을 (재일교포의 경우) ‘경계인’ ‘세계인’이라 표현하는 것에 안타깝기 때문이다.
 


 물론, 단어는 그저 소리일 뿐이지만. 나 또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TCK라는 용어를 찾기까지 스스로 ‘허공의 존재’라 표현한적이 있는 만큼, 그 단어가 나오기까지 얼마가 큰고통이 있었는지 알아 그들의 인터뷰가 더 안쓰럽다.






 TCK 게시판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외국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다. 정확이 말하자면 유치원을 처음 미국에서 다녔고,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서야 한국에 왔다. 나는 뽀뽀뽀나 하나둘셋 대신 Sesame Street으로 나를 구성하는 바탕의 틀을 만들었고, 웨딩피치나 사오정이 나오는 만화는 귀국 후 학교에서 가끔 추억얘기에 불타오르는 아이들의 입에서 들은 어떠한 존재일 뿐이다. 아침에 국에 밥을 말아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체끼가 있을 땐 베이글이나 소다크래커를 잘근잘근 씹어먹으면 나아진다(대개 오래동안 밥위주의 식사를 하면 그렇게 되는거라).



 
 내가 만약, 피치 못 할 사정으로 귀국하지 않았거나, 그 때 이민을 결심했다면 나는 아마 지금 -재미교포-의 신분으로 타자를 한땀한딴 씨름하며 누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일단, 누구든, 교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아한 생활을 한듯하지만, 외국에서 많은 차별을 겪은 입장에서 재일교포, 재미교포들이 한국에서 겪는 차별이 아무리 노력해도 납득이 가질 않는다. 잦은 침략을 겪은 민족의 공격성향인 건 아는데, 그것이 단지 ‘외국물을 먹고 자랐다'는 이유로 그들과 한패로 여기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일단, 정리를 해보자. 나의 복잡한 심정을.



  ※ [너]와 [나]는 , 그들vs우리 라는 개념으로 사용할 것이다. 이편 저편 뭐 그런.




 1. [너]와 [나]의 경계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 나는, 우연히 부모를 따라 외국에 나갔다. 아빠가 해외지사에서 일하는 기간동안 나는 ‘교포’였다. 한국어보단 영어가 익숙했고, 미국과 영국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쪽 사고방식으로 살았다는 소리다. 나는 [너]인가?

 하지만 나는 양부모 모두 토종한국인이고, 집에서 한국음식을 먹고, 가끔은 이탈된 느낌이 들지만 어디가서 주저없이 ‘South Korea’에서 왔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지난 10년을 한국에서 살았다. 중고등학교는 100%한국에서 다녔다. 나는 과연 [너]일까 [나]일까.



 * 이민사회로 대변되는 미국이나 캐나다에는 두 종류의 교포들이 살고 있다.



 하나는, 자신을 ‘한국계 미국인’이라 칭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미국인인데, 기원을 따지자면 한국에서 유전자를 받았다는 이들이다. 이들은 ‘순미국인’들 처럼 생활한다. 그리고 미국인인 것을 자랑스레 여긴다. 그레이 아나토미에 나오는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가 그 예이다.



 두 번째는, 한 번도 한국땅을 밟아 본적이 없더라도, 한국적인 전통을 유지하려고하며 스스로를 한국인이라 칭하는 -재미교포-들이 있다. 이들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누구보다도 강한 애국심을 보인다. 이들은 과연 [너]일까?




 그리고, 기자들이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 칭하는 첫 번째 경우-한국계 미국인-는 과연 [나]일까? 그러니까, 그 미국인들이 ‘한국인’이라는 한국사회의 시선은 무엇일까.




 * 이젠 한국에도 다양한 유전자들이 유입되고 있다.


 그 전에, 한반도 자체가 전세계의 핵심유전자들이 모여든 유전자의 우물이긴하지만(고인돌에 묻힌 뼈의 증거에 의하면, 한국인의 조상중에는 심지어 북유럽인들도 있었다.) 뭐 한동안은 말도안되는 ‘단일민족’을 유지했으니.

 어찌되었든, 국제결혼, 혹은 외국인들의 귀화로 인해 한국은 대놓고 다양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전혀 토종한국인의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고도 호적에 -한국인-이라 적혀있는 날이 다가왔다.
 


 이들은 [너]인가? 온전한 [나]인가? 이도저도 아니기 때문에, 일단 ‘나’는 아니라고 [너]일까?






 2. 그래서 무엇이 다르고 그렇게 불편하단 말인가.



 당신들도 미드와 일드 등등을 보고, 한국인이면서 파스타 먹고 커피 마시고, 일본어 하고, 그들의 예절도 따라해보고, 그들의 지식과 문화를 습득한다. 해외여행도 해보고, 아티스트 정재형씨처럼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인인게 더 어설퍼보이는 그런 사람들도 있다. 자아가 완전히 형성된 성인기 이후에 해외로 나간 사람들도 많고, 사람에 따라서 그 나라와 자기 안의 무언가가 너무 잘 맞아서 ‘그쪽화’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이 불편한가?



 그러면, 지리적인 농간으로 나라밖에서 태어났다거나,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 혹은 서류상에 외국인이라 적혀있는 사람들. 그들은 왜. 불편한가.

(원정출산은 해당되지 않는다. 고의적으로 그 땅와 관계를 맺지 않고 그저 ‘태어난’ 존재라.)




>> 생각이 다른 것이 그리도 불편한가? 인간은 본래 개성적인 존재다. 창의성을 앞세운 이 시대에 그들 앞에 있으면 피해의식이 느껴지는가?

>> 행동이 다른 것이 불편한가? 집안 마다 분위기가 다르듯 행동도 다르다. 같은 토착 한국인이더라도 환경에 따라 행동의 차이는 나타날 수 있다.



>> 왠지 ‘그들’과 한패로 보이는가? 교포들이 말하지 않는가.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물론, 자란 땅에 대한 애정은 있지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깊히 알아봐라. 행여 그들이 한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 그건 사실 안타깝고 답답해서.하는 푸념의 소리에 가깝다.



>> 아니면 솔직히. 밥그릇이 뺏긴 느낌인가? 이주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당신의 생계를 위협하러 온것으로 보이나? 그저 한국에서 돈뽑아가려는 존재들로 보이는가?




 묻고 싶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것은 아니냐고.
 
 본인의 능력 부족의 독기어린 화살을 통쾌하게 쏘아볼 과녁을 찾고 있던 것은 아니냐고. 왠지 [우리]가 아니니까 공격할 명분이 주어진 것 같고. 그냥 꼴보기 싫은 건 아닌지.




 말해 달라. 정말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냥 ‘싫다’ 말고, 진짜 그 반감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나서 싫어하든 좋아하든 욕을하든 하란 말이다.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단순히 표출만하는 것은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행동이다.





 3. 그럼 진정한 한국인이란 무엇인가.



 그들을 매국노, 양키, 일본 놈, 박쥐. 군대안가고 돈 벌러 온 인간.이라 욕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태극기 앞에서 울어본적이 있냐고. 그저 펄럭이는 태극기 하나에, 심장이 무너져내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은 적이 있냐고. 한국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이 잘 못 된 정보를 얘기 할 때, 울며불며 따져본적 있냐고. 일상을 민간인 외교관으로 살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본토에 있는 한국인들이 뭐라고 욕을 하던지 그저 심장이 늘 ‘고국’을 그리워하는 그 심정을 아냐고. 묻고 싶다.



 한국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선거권도 행사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스스로를 발전시키지도 않고, 나라 욕하는데 바쁘고 그리고 대개, 국가라는 개념이 별로 없이 그저 ‘살고 있는’ 이들이, 제 발로 한국을 찾아오고, 이야기하고, 한국인으로 살아가고자하는 이들을 욕할 자격이 되냐고 물어보고 싶다.



 ‘외국인’혹은 ‘교포’로 살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가장 놀란 것은, 얼마나 나라를 너무도 가볍고 하찮게 여기는 태도였다. 이들은 한국에 살고 있을 뿐이지, 한국인이라는 자각이 없는 족속들이라 생각을 한다. 나는 이들보다는 태극기를 달고 운동을 하고 싶어했던 추성훈같은 사람들이 더 진정한 한국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 ‘한국인’이라는 것은 하나의 의식이다.


 사람의 발은 땅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어디든 떠날 수도, 휩쓸릴 수도 있고, 어디에서 태어나는지는 어떠한 우연의 산물이다.



 당신이 어느 날 이민을 결심하고 미국에서 가게를 여는 순간, 당신의 아이도 재미교포가 될 수 있고. 전쟁 때 동경유학 같던 증조부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그곳에 정착하고 살았다면, 어쩌면 당신은 이지메를 견디다 못해 알지도 못하고 갈 일없는 한국의 흔적으로 고생하느니- 하며 일본이름을 밤새 고민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 말도안되는 악플들이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생각을 하고 써줬으면 한다.


  
나는 누구보다 강하게 한국인이라 주장해왔던 어린시절에 막상 '조국의 품'에서 처음 들은 소리, 그리고 별명이
'외국인'
이었다.
 

 경험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은 감이 안잡히겠지만 그 시선은 꽤나 힘들다. 그동안 나라밖에서 한 투쟁들이 눈앞에서 무너지는 경험도 했다. 집떠나면 고생이라고, 많은 해외동포들은 나라밖에 사는 서러움을 겪고, 그럼에도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 보이지 않는데서 노력하고 열심히한다. 한국의 이름을 드높혀주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에 선정되지 않았더라고, 이들이 [너]가 아닌 [우리]라는 것을 알아 줬으면 한다.





 과연 몇 명이 이 포스팅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그냥. 궁금하다.



 

Comment 19 Trackback 1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02.12 15:05 address edit & delete reply

    추성훈 한참 한국에서 운동 생활할때 많이 힘들었다 하더군요..그놈의 빽도없구 그래서 항상 밀리는 것 때문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떠났다는 말도 있구요..추성훈 마음도 이해도 되고 욕하는 사람도 이해도 되고 어느 입장에서 보느냐가 문제인것 같습니다^^

    • Lynzi Cericole 2011.02.12 18:0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욕하는 사람의 입장은 어떤건가요? 궁금해서 여쭤보는거에요- 제가 그 입장을 모르는터라;ㅂ;

  2.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02.12 16:04 address edit & delete reply

    전추성훈씨 마음 이해되요.

    • Lynzi Cericole 2011.02.12 18:0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반갑습니다ㅎㅎ 오붓한여인 같은 분들도 계신데 표면에 드러나는 사람들이 악플러라ㅠ

  3. Klassikcat 2011.02.12 17:5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재미교포나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 역시 사라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같은 한국인이며 같은 피를나눴는데 그사람들을 욕한다는건 말이 안된다고 봐요.

    • Lynzi Cericole 2011.02.12 18:02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안녕하세요^^ 윗글에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조선족의 경우도 마찬가지같아요. 한국에서 그들을 한민족으로 여기질 않으니 차라리 중국의 소수민족이 되는 편을 택하려는거 같기도 하구요ㅇㅇ

  4.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02.12 21:17 address edit & delete reply

    재외동포에 대한 차별은 우리가 느끼는 차이때문이 아닐까생각합니다. 즉 사유의차이에서 비롯되었겠죠.

    저도 저희친지가 교포로 지내고 있고, 만나고 하지만 어딘가 모르는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년이나 3 년에 한번씩 한국에 들어오지만 매번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어느 한시점에 정체되어 있는 느낌과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합니다. 뭐 아니다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분들이 한국을 떠나기전의 사유방식과 이민현지의 사유방식이 결합해서 생기는 현상이겠지만 같은 친지내에서도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는 사람을 주변사람과 저도 느낍니다.

    하지만 극복할여지는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살아온 과거와 환경을 알아가고 사유방식을 이해한면서 서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적 차별은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재외동포의 일부분이지만, 그들의 행동에도 조금은 책임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변에서 겪은입니다만, 재중동포(조선족)의 한국이외의 유학국가에서 특히 유학생회 할동에서 빚어진 문제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도 책임은 일정부분 있다고 봅니다. 즉, 재중동포 유학생들은 중국유학생회와 한국유학생회를 둘다 모두 가입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전혀 다릅니다. 두개다 활동하는 것은 맞지만, 중국에게 유리한 것이 있으면 중국인이라 소개하고, 한국유학생회에 유리한 것은 한국인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종종 현지 학생뿐만 아니라 유학생들에게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차별은 없어져야 하지만, 차이는 인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차별과 차이를 구분 못한다는 것이 문제인듯 합니다.

    • Lynzi Cericole 2011.02.13 00:51 신고 address edit & delete

      당연히 차이가 있죠. 그런데 그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차별을 하는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무조건적인 반발이 많아보였거든요 제 눈에는.

      저도 이 포스팅을 하면서 한가지는 다음을 위해 남겨둔 부분인데, 중국동포, 즉 '조선족'의 경우처럼 안좋은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도 상당히 있습니다. 이건 좀 민감한 문제인데, 우선은 양쪽의 정체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올 수 있어요. 그걸 악용하게 될 때 도덕적인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고.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욕바가지로 먹을 작정하고 쓸 포스팅에 써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쭉 성장한 토종한국인인 저희 엄마도 지적을 한 부분이있는데, 한국사람들의 본성에 '못 된'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하느라 작성을 못하고 있는 부분인데요. 좋게 말하면 머리가 좋고, 나쁘게 말하면 약은 부분이 분명 한국사람에게 존재합니다.
      아마 갖은 침략과 뚜렷한 기후적응 등을 위해 발전된 유전적인 성향같은데요. 그 부분과 어느정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소중한 내용 감사합니다^^ 그 이질감은 뭐, 저도 사촌이 계속 캐나다에 있는 상황이라 저번에 오랜만에 귀국했을 때, 좀 어벙하고 미련맞고 etc.해 보이는 행동에 '아 나도 저랬구나'싶기도 하더라구요.

      솔직한 말로, 별로 보기 좋진 않죠 그부분은. 하지만 환경이 갑자기 달라지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 일단 인간의 뇌가 가드를 올리고 보거든요 .

  5. 드래곤포토 2011.02.12 22:58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추성훈은 한국과 일본 역사의 희생양이지요
    그는 한국에서는 한국인이 아니고 일본에서는 일본인이 아니지요..

    • Lynzi Cericole 2011.02.13 00:53 신고 address edit & delete

      그렇죠. 그러니까 그 중간지점에라도 가상의 땅을 만들어 '정가운데'있다고 표현을 했는데, 그걸 가지고 사람들이 또 '독도네' '동해 한가운데 떠있냐'식으로 비꼬더라구요. 그 부분에 분이나서...

  6. 데댕구 2011.02.13 03:11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제가 생각한 해답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는 의식을 키우는게 첫번째 같습니다. 그중에도 재미교포와 재일교포는 어느정도 시샘이나 질투는 학교생활에서 그치고 한국 사회에서의 차별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압니다?! 진짜 심각한 문제를 겪는 사람은 탈북자 조선족등이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당하는 것은 마치 동남아에서온 노동자를 대하듯이 하등한 존재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같은 사람으로써 인종 차별 역시 안되는 행위지요) 정말 자라온 환경에 대한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하지않는 국민의식이 성장하길 바랍니다!! 글고 한국에 차별만 하는 사람이 있는것은 아니잖아요... 그들(교포들)과도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며 친구가 되는 사람들도 있으니 차별하는 사람의 말은 귀로 흘리고 진정한 차이를 인정한는 친구들과 유대관계를 쌓는 것도 교포들이 갖추면 좋은 지혜인것 같습니다.. 개념없는 그러려니 하고 개념있는 사람과 어울리면 됩니다!!ㅋ
    쓰다보니 두서가 없네요 ㅠㅠ 어쨌든 재일 재미 교포라고 외국인이라는 생각은 안하는것이 옳은것 같습니다.
    저는 북한, 공부 , 축구에 관한 포스팅을 하는데요... 괜찮으시면 제블로그에도 방문해 주십시오?!ㅋㅋ
    블로그 한지 얼마안되서 이웃도 없고 외롭네요ㅋ;ㅠㅠ

    • Lynzi Cericole 2011.02.13 13:5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그러게요. 한국인들은 다르단 말고 틀리단 말을 구별하지 못하더라구요. 엄연히 단어가 있는데 의식속에 구별이 되지 않기 때문에 혼동하는 것이겠지요?

      예전에 조선족 아주머니랑 알고 지냈는데, 저희 가족은 그냥 친구처럼 지냈거든요. 근데 다른 한국가족들은 그냥 잡부 하찮은 사람 취급하면서 말도 안 섞더라구요...

      좋은분들도 많이 계시죠^^ 더 늘어났으면하는 바람에서 썼답니다. 저도 블로그를 꾸준히 안게 아니라 아는 사람들이 없네요;ㅂ;

  7. Paul K. Cho 2011.02.15 09:47 address edit & delete reply

    매일 여기 들어와 보는데 이 글의 제목만 보고 읽지 않았다가 오늘에서야 읽었습니다. 참 여러 생각을 해야하는 과제를 던져주는 글입니다. 본인은 전형저인 TCK가 아니지만 현재 TCK에 대한 정의에 대해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정의 중 하나의 경험을 한 사람입니다. 물론 다양한 국제 경험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너)와 (나)의 대한 물음은 제게도 참 고민하게 했던 주제 중 하나입니다. 제 동생이 흔히들 얘기하는 국제결혼(본인은 적어도 국제결혼[international marriage]이라는 용어를 오히려 inter-cultural marriage, 또는 cross-cultural marriage로 부르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문제에 대해 더 할말이 많지만 여기서 생략)을 한 경우입니다.

    가족이 만날때 바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합니다. 어떨때는 결혼한 동생에게 미안함을 느끼기도 하지요. 본인 역시 도플파란님이 말씀하신대로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지 않고 Lynzi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상황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참 안타까운 상황인 것에 동의합니다. 나아가 다름(different)을 틀림(wrong)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은 참 많이 고쳐야 할 삶의 태도임에 틀림없습니다. 간단한 리플형식으로 쓰려니 두서가 저절로 없어지고 짚고 넘어가려 했던 내용도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네요. 다음 기회에 잘 정리해 보겠습니다.

    • Lynzi Cericole 2011.02.15 13:5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감사합니다^^ 이런 변두리 블로그에 매일 들어와주시는 것도...

      그런 상황 어렵죠. 저같은 경우에는 몇해전까지 동생이 봉인(?)상태에 있어서 저 혼자 TCK,혹은 [다른/너] 특징을 보였었거든요.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저나, 저 혼자 '이상'해서 이해를 할 수 없는 가족이나 모두 함께 힘들었죠. 동생분과의 관계같은 경우 대화와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소통을 하면 할 수록 접점을 찾을 수도, 다른 방식을 이해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저희 가족은 사정상 그게 불가능했어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기본적으로 우주와 우주, 세계와 세계의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형성된 환경마저 다른 우주라면 끝도없는 미지의 세계겠지요. 그러기에 알아가는 과정이 더 놀랍고 소중할거에요- 가족분들 열심히 노력해보세요~

  8. 2011.04.02 10:58 address edit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Lynzi Cericole 2011.04.02 18:01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재일작가들이라... 히토나리나 바나나같은 일본작가들은 읽으면서 정작 재일작가들은 생각을 안해봤네요ㅇㅁㅇ... 사실 3세대면 벌써 백년이잖아요... 무리도 아니죠, 그러면서도 남아있는 건 있나봐요~ 유대인들도 그렇게 유지되는걸 보면-

      좋은 재일작가 소개해주실래요:)??

  9. 2011.04.03 01:28 address edit & delete reply

    별로생각한적업엇던주제인데이렇게보니느낌이다르네요.

  10.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02.11 19:25 address edit & delete reply

    너무 잘 읽고 갑니다. 그냥 갈려고 했는데 너무 좋아 댓글 달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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