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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22 대한제국의 의민태자(영친왕), 역사에 빼앗긴 인생과, 그의 정체성 I(8)
  2. 2011.02.27 제 3문화 아이들로 풀어본 재일교포들의 뿌리의식

대한제국의 의민태자(영친왕), 역사에 빼앗긴 인생과, 그의 정체성 I






 몇달전에 이은, 또는 영친왕으로 익숙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의민태자에 대해 약간 알게 되었다. 오늘, 또 우연한 계기로, 지나가다 틀게된 [역사 스페셜]의 내용이 바로 그에 관한 것이었다.



 익숙하든 안하든, 린지는 이후부터는 그의 올바른 호칭인 [의민태자]로 칭할 것이다.



 또한,

 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방송에서도 대놓고 끄집어내는 [경계인]이라는 말 대신,
TCK로서의 관점으로 그에 대해 부족한 글을 쓰고자 한다.

















 원래 의민태자에 대한 포스팅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많이 일러졌다.




 그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의민태자는 조선의 마지막 세자이고, 고종황제와 순헌황귀비 엄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덧붙이자면 고종이 가장 사랑하던 아들이었다고 한다.




 영친왕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의민태자는 흔히, 조선왕조의 세자이면서 동시에 일본 황실의 일원이었던 신분의 모호함이 낳은 '불편한' 인물로 자리 잡고있다. 지금의 우리는 정서적으로도 납득을 하고 있지만, 그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인생을 살았다. 안타깝게도, 당시의 고조된 조선의 민심속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의민태자가 일본으로 '유학'이라 칭해진 볼모 생활을 하게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다른 포스팅에서 밝혔지만, (한국인이, 한국인으로, 한국에 대해 알아야할 이야기_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고종황제는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을 가졌던(오늘날의 역사는 '자질'이라는 단어로 한정하게 만든다.) 강적이었기 때문에 일본측에서 강제퇴위를 진행했다.


 이 때의 비화를 잠시 이야기하자면, 고종황제의 퇴위식이자 순종황제의 즉위식에, 정작 두 사람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외신들에 의해 자국 1면에 그림을 동반한 기사도 났는데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당시 물러날 이유가 없는 고종은 물론이고, 순종 또한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하며 함께 궁에 있었다고 한다.
 주인공 당사자들이 없는데 식이 진행되겠느냐- 뭐. 당시 일제였다. 무엇인들 못하랴. 고종과 순종의 자리는 [연기자]들로 체워졌고, '퇴위식'은 공식적으로 무사히 마쳤다.








 이에 대해, 고종은 교과서에도 알려져있는 [헤이그 밀사] 사건을 일으켰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이로 인해 일본의 압력만 높아졌다. 이 상황에서, 어차피 불임이었던 순종에게 후사가 없었으니(뛰어난 서예가였던 그의 흐트러진 글씨로 순종황제는 당시 일본측에서 수랏간을 통해 매일 아침 마시던 커피에 타넣은 대량의 아편 사건으로 일상 생활조차 힘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가장 사랑했던 아들, 이은을 [황태자]로 책봉했다. 순종과의 관계를 따지자면 [황태제]란 표현이 맞는데, 고종황제의 아들인 이은에게 굳이 [황태자]란 이름을 준 것은,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황제는 고종 자신이라는 의미를 담은 정치적 승부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의 선택이 썩 현명했다고 볼 수는 없다. 황제로 앉아 있는 순종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고, 급박한 정치적인 상황속에서 31세의 든든한 [이강]에게 태제든 태자이든 , 다음을 책임질 타이틀을 줬어야했는데, 개인적인 총애로 이은을 선택했고, 이것은 사랑하지 않으니만 못했을 저주가 되어버렸다.





 멀쩡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의 나라 군주를 두고서 순종의 사인을 위조해가며 조선을 '통치'하고, 외교문서도 조작해 해외에 뿌린 당시 일본과 조선총독부의 창의적인 발상으로 인해, 대한제국은 황태자를 꼼짝없이 빼앗기고 말았다.




 세자교육에 끔찍한 조선왕실의 전통을 빌미 삼아 ['낙후 된' 조선의 교육이 아닌, 선진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의 최고 교육을 시켜주겠다.]는 명목하에 , 반박 할 여지도 없이, 의민태자는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게 되고 말았다.










 당시 대부를 맡아 그를 데려간 사람은 다름 아닌, 이토 히로부미였다.



 일본의 목적은, 어린나이에 대한제국의 후계자를 데려가 '일본물'을 들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한 친밀감을 최대화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부였는지, 그를 '보살핀' 이토 히로부미는 극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에서 우러난 행실이었다고 믿기는 힘들다. 정복당한 부족 족장의 머리를 들고 행진을 하듯, 기모노를 입힌 의민태자를 옆에 두고 찍은 사진이 대외홍보용으로 뿌려졌다.




 그렇게 해서, 이은은 세자가 된지 일년도 채 되기 전에 1907년,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1살이었고, 그의 곁에는 동궁대부였던 고의경, 시종무관 조동윤, 그리고 끼어서 가게된 외사촌 엄주명만이 있었다.



 일본측에서는 유학이라 우겼지만, 조선황실의 가족들이 아무리 간청을 해도 방학 때 조차 귀국을 할 수 없었던 의민태자는 명실상부한 '볼모'의 처지였다.











 그의 어머니이신 엄씨가 1911년 병사했을 때도, 장례를 위해서 어렵게 4년만에 귀국을 한 그는 '전염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다가가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정서를 이해하면 '그럴 수도 있지'할 문제가 아니다. 오래된 무덤조차 실제 살아있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해 찾아가고 '대화'까지 하는 한국의 정서상, 죽은 사람이라도 '시체'가 아니다. 그 사람 자체로 인식을 했을 것이다. 하물며, 4년만에- 자식이 보고싶어 홧병으로 돌아가셨을 어머니를 앞에 두고 다가가지도 못하게 했다니. 심성을 보았을 때 효심이 지극했을 의민태자에게는 어머니가 더 이상 '움직이지'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혹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7년 뒤, 엄연히 태자였던 의민은, 그를 너무도 아꼈던 아버지 고종의 임종마저 지키지 못하고 떠나보내야했다.







 의민태자의 외로움은 단순 [경계인]이란 단어로 그를 표현한다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더 많은 시간과 실제적인 인생을 보낸 곳이 일본인데, 겨우 어린아이로 떠났던 조선에 대해 사무치게 그리워했을까?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제 린지는 다시 그를 TCK라는 울타리 속의 사람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경계]에 서있는 사람이 아닌, 문화와 문화 사이를 오가며, 그 사이에서 벌어진 새로운 문화에 발을 딛고 있던 사람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하는 것은, TCK들이 '국경'에 서서 이쪽과 저쪽에 발을 자유자재로 걸치는 '박쥐'가 아니라는 점이다. 100%옳은 이미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TCK들이 고국을 떠난적이 없는 비TCK들이 이해하기 힘든 강도의 애국심을 품는다. 




 린지의 TCK게시판의 부제가 [허공]이니 만큼, 그곳은 보이지 않는 땅이고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허공이라는 것은, 그와 동시에 모든 곳에 펼쳐져 있다.





 이런 표현이, 의민태자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는 '혼자'가 아니다.










 전편으로 짧게 끊어 마치면서_



 이방자 여사(정식명칭: 의민태자비)의 <세월이여 왕조여> 내용중에,
의민태자의 책상에 놓인 이상한 돌조각에 대해 묻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그 내용을 옮겨본다.



전하께서는 일본에 와 너무 그리운 나머지, 고종황제께 10살 때부터 일본에 가기 위한 준비기간 동안 있던 낙선재 뜰의 조약돌 몇 개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하셨다고 한다. 맨질맨질 해져버릴 정도로 닳아버린 조약돌은 향수와 외로움을 달래주던 벗이자 장난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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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플파란 2011.05.13 06:44 address edit & delete reply

    의민태자는 영친왕 이은이 죽은 뒤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정한 시호입니다..오랜만에 영친왕의 글을 읽어보네요... 영친왕도 그렇고, 덕혜옹주도 그렇고... 2005년에 작고한 영친왕의 아들인 이구씨도 그렇고... 모두들 힘든 삶을 살았고... 기구한 삶을 살다가 삶을 마친 인물이지요.. 이젠.. 기억의 저편으로 살아졌고... 점점.. 잊혀지고 있지만... 이젠.. 홍유릉 구역에서 평안히 지내고 있을지...홍유릉에 가면.. 영원이란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영친왕이은과 이방자 여사의 묘입니다. 그 뒤엔 덕혜옹주와 의친왕 그리고... 그 뒤에는 이구씨의 묘가 있습니다..

    • Lynzi Cericole 2011.05.13 07:1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오랜만이네요ㅎ

      원래 왕명이나 태자 이름은 나중에 지어지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영친왕은 일본쪽에서 한국의 국격을 낮추기 위해 만든 명칭이라더군요. 대한제국은 엄연히 황제의 나라라고 우리가 공표를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정한 의민태자라는 호칭이 맞다고 책에 나와있었네요ㅎ 그렇게 부르고 싶게 되었습니다.

      후... 귀여운 막내딸 같은 느낌히 선한 덕혜옹주의 사진들을 보며 가슴이 아픕니다.

      의민태자에 관한 글을 읽고, 안 그래도 "한번 '찾아뵙'자"라는 기분이 절로 들어요. 스스로에게 잠들어 있던 이런 '한국적인 의식'에도 적잖게 놀랐더라지요. 이미 떠나간 사람인데,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은 어리석은 것일까요ㅎ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 이바구™ - 2011.05.13 14:37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어제 역사스페샬에서 영친왕의 불행했던 과거를 봤습니다.
    그의 불행했던 위치에 가슴이 아프더군요.

    • Lynzi Cericole 2011.05.13 15:5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불행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대표로' 받아서 더 안타까운 것 같아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3. 2011.05.13 15:18 address edit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Lynzi Cericole 2011.05.13 15:54 신고 address edit & delete

      그렇죠...

      어처구니없게 당한 부분에 대해서는 조선왕조만한 경우도 드문것 같아요. 물론, 세도정치로 진작에 무너졌을 왕조였지만, 과거의 성군들에 대한 존경으로 백성들이 유지시켰죠.

      차라리 백성들이 일으킨 일이라면 '순리'라고 생각 할텐데...

      반복되지 않도록 과거를 잘 알아보고 노력을 해야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4. 여울해달 2011.05.13 17:2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어제 이걸 보기전까지는 역사스페셜이 종방된 줄 알았어요.^.^
    여하튼 어제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돌더군요.
    누구에게도 자신의 아픔을 털어 놓을 수 없는 삶을 살았던 망국의 황태자 이야기...
    일본왕족에 준하는 대접을 받으며 몸은 편했을지 몰라도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졌을거라 생각합니다.
    당시 조선백성들도 그렇지만 다른 누구보다 조선의 처지와 왕실의 무능함에 피눈물을 흘렸던 것은 아마도 영친왕 자신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 Lynzi Cericole 2011.05.13 23:57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성품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을거에요...

      다음 포스팅에 이어하려했지만, 일본에서 자리 잡으면서는 사비로 자신의 나라를 위했죠. 전부 소용이 없게되었지만요...
      그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이 너무 끔찍해서 울분을 토하게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는 것 또한 씁쓸해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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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문화 아이들로 풀어본 재일교포들의 뿌리의식





 블로그에 '귀국자녀'를 중심으로 포스팅을 하다보니, 제 3문화 아이들에 대한 혼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 게시물에 작성했듯, [제 3문화]라는 개념은, 살고 있는 나라부모의 문화가 달라 만들어진 새로운 제 3의 문화-라는 뜻이다.

 *>> 자세한 내용
2010/08/01 - [bein TCK, 제 3 문화 아이] - TCK/ 제3문화 아이들] #2 제3문화 아이란...? / 허공에서 살아가기


 이 정의를 바탕으로 살펴볼 때, 교포들은 독특한 형태의 TCK(제 3문화 아이들)에 해당한다.


 TCK를 정의하는 기본 요소중에 '높은 이동성'이 결여되어 있고, 지금 상황으로는 지금  사회적으로 조명을 받는 연령대의 재일교포들 같은 경우에는 3세대가 많아 , 그들의 부모 또한 사실상 성인TCK로 분류되어 아이들과 같은 문화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명확한 의미로 '제 3문화'는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넓게 보았을 때 그들은 TCK에 속한다. 왜냐하면, '부모'라는 개념은 '고국'으로 확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TCK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문화적 유랑민', 어떤 의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중간지대'같은 곳에 본적을 두고 있는 것으로 인해 일어나는 특징과 혼란들이 있어서다.
 [제 3문화 아이들]이란 책에도 언급되지만, 국가의 이동이 없어도 독특한 문화집단에 속해있다가 다른 집단으로 이동하는 아이들도 이에 해당이된다. 또한, 일반적인 TCK들도 '미국 버블' '일본 버블'과 같은 '자국 문화 집단'에서 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일본내 재일교포 사회는 일본 안의 '코리안 버블'로 볼 수 있다.('코리안'을 쓴 이유는 남과 북의 개념 때문이다.)



 재일교포 사회의 부모는 한국이다.

 
 일제시대 때 강제노역으로 끌려간 한국인들이 해방 후에도 자금부족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잔류해 있는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독특한 역사적 상황 때문에, 외모가 비슷해 '거울' 상태로 살아가면서도 , 재일교포들은 민족의식이 굳건한 편이다. 미국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결속이 비슷한 경우다.



 ('거울'상태 , 제 3문화 아이 유형 관련 포스팅: 2011/02/25 - [bein TCK, 제 3 문화 아이] - TCK/ 제3문화 아이들] #8 제3문화 아이, 그리고 숨겨진 이민자 / 허공에서 살아가기)


 다시 설명하면, 이들은 떠들어대는 언론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축구선수 이충성이 겪은 것처럼 일상에 아직도 지배적인 생각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본과의 '잡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의 뿌리는 명백히 한국이며, 재일교포가 일본(지리적 고국)에 완전 동화되지 않고 아직도 저들의 사회(정신적 고국 공동체)를 유지해가는 이유 또한, [한국인이라는 뿌리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버블'이 있다지만, 무균실이 아닌데다, 일본인과 외모가 유사한 한국인은 쉽게 '숨겨진 이민자'단계를 거쳐 그 나라를 반영해버리는 '거울'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고국문화(한국)과 달라진다.
 영국인들이 넘어가서 개척한 미국이 꽤나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가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이 부분을 가리키며 '봐. 일본인이 되어간다니까.'라고 받아들이지 않길 바란다. 한국인이라는 의식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문화집단을 만든 것이니까.




 그럼, 재일교포들의 성장배경의 남다른 부분은 무엇일까?



 바로 , 3국의 혼란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부모세대에서 확실히 북한출신이라 생각하는 재일교포들은 북한과 일본 사이에 놓인 상황이지만, 조상들의 뿌리의식이 남한에 가있는 경우는 다르다.

 안타깝게도 남한의 관심부족으로, 재일교포에 대한 지원은 실상 북한에서 전담해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교육기관]인 [학교]가 익히 알다시피 조총련계, 북한 학교라는 뜻이다.



 다시 정리하자. 남한이 고향인 재일교포 가정은 , 남한 사람이 일본에 살며 북한의 교육을 받는 형태인 것이다.


 린지도 비슷한 상황에 놓인적이 있다. 몸은 유럽에(또는 영국인 학교)에 있으면서 머리속에 채워지는 교육은 미국에서의 생활과 학교에 기반을 두고, 한국인의 뿌리를 지니고 있었다.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아이의 사고의 틀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가정 혹은, 뿌리는 , 아이의 가치, 의식 혹은 존재 등의 자아의 기반을 형성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조각들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지리, 땅- 살고 있는 그곳은, 그런 추억을 담는 그릇이다.




 재일교포가 일본에 애정을 보일 때, 그것은 '매국'행위가 아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일본은, 자신을 담은 땅이고, 앞서 표현했듯이 그릇이다. 어릴적 자랐던 놀이터에 누구나 애정을 갖는다. 일본에서 자란 재일교포들에게 일본은 아마 그런 곳일 것이다. 자신의 추억과 삶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이러한 재일교포들은 다른 나라에 체류하는 교민들과 다른 힘든 점이 있을 것이다. 바로 역사적 상황 때문인데, 대부분의 재일교포들은 부모나 조부모들이 일본에 직접적인 고통을 겪은 입장이라 순수하게 일본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TCK들은 자란 땅을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며 애틋해하고, 정작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체류했던 나라에 대한 그리움에 빠지곤한다. 그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거의 당연하고.



 하지만, 재일교포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을 마음껏 사랑하지 못하는 입장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에 기우는 순간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배신,과 동시에, 정신적 고국에 대한 배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들어 유난히 재일교포 유명인을 들먹이며 언론질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설프게 내세우는 '다문화'슬로건 사업의 일환인지. 올해가 시작된지 얼마 안되었는데 , 추성훈, 양방언, 추성훈, 이충성, 추성훈, 이충성, 아유미... 뭐 이런식으로 계속 노출이 되고 있다.



 사람들의 별의미없는 선입견이나 차별이 깨진다면 좋기야 좋지만... 무튼,

 오늘 시사매거진이나 봐야지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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