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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1.03.26 다른 문화를 익히는 혼돈 그리고 그로 인한 수치심(2)

혜원 신윤복, 「미인도」내멋대로 감상하기 [상편]







 혜원의 미인도. 워낙 오래전에 마주친 그림이라, 첫 감상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만해도 내 눈은 루브르의 벽을 장식할 법한 서양화에만 익숙해져 있었는데, 「미인도」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모습에 실망했던 건 기억이 난다.
 


 사실 그렇다. 나 같은 경우에는 한국과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는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 현실은 실망스러웠다.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는 가장 끔찍하다 배웠던 '영국사'보다도 재미없고 찌질했다. 침입이나 당하고 망하기나 하고, 그나마 삼국시대 때 좀 괜찮았다고 얘기해주더니 그건 금방 끝나고, 중국한테 사대할줄 밖에 모르는 짜증나는 이야기들만 가득 나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관절 누가! '그딴 역사'가 있는 나라를 사랑하겠나. 학교에서 배운 한국이란 나라는 그랬다.



 예능 교과서의 배치도 마찬가지였다. 이 부분은 다음에 언젠가 자세히 열폭해 보도록 하고,




 무튼, 그런 이유로. 설명도 되지않고, 웅장하고 역동적인 서양의 미술품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한국화를 보며 자괴감 비슷한 것도 느꼈다. 문화란 그 나라의 기상과 자부심, 그리고 수준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라 이런 빈약한 '호박'을 미인이라 칭해야했던 선조들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어떠한 계기로 신윤복에 흠뻑 빠져들었고, 그러부터 몇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옛그림들을 보는 나름의 눈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처음 뜯어본 그림이,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다.












 우리의 옛그림을 보는 방식은 오른쪽 윗 귀퉁이부터 ↙이렇게 내려가는 형식이다.




 오주석님의 책에 의하면 그렇다. 맞다. 원래 동아시아의 글씨가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여지는 것이라, 그림을 즐기는 양반들도 시선이 그렇게 움직였을 것이다. 그림은, 당연히 그 시선에 맞게 그려지고,















 우선 찬찬히 슬로우 모션으로 살펴보면, 풍성한 트레머리가 보이고, 초롬한 얼굴, 가느다란 목, 여린 어깨가 눈에 들어온다. 



 여인이다.


 여인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씩 용기를 내어 나아가보면, 작달마한 손이 옷고름과 노리개에 엉켜있고, 드러날듯 말듯한 여린가슴과 잘록한 허리에 눈을 둘곳을 잃는다. 그리고 드디어 풍성한 치마가 왠지 손을 내밀고 싶게 한다. 들썩이며 쪽빛 치마 아래로 삐져나온 앙증맞은 발이 보인다.




 다시 눈길이 간다. 아름다운 여인이다.


 어느새 관객의 눈은 장난스러운 손에 고정되어있다. 그저 노리개를 가지고 노는 것 뿐인가, 아니면, 아슬하게 걸쳐있는 저 옷고름을 풀어내릴 것인가. 긴장을 하다 '아차' 정신차려야지, 하고 시선을 거두어들이려는데, 저고리 아래로 드리워진 연지빛 옷고름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요즘이야 워낙 하의실종자들과 앙트와네트 상의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이런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겠지만, 당시의 사대부들의 마음을 생각해봐라. 여인의 품에서 흘러나온 붉을 끄나풀은 충분히 자극적이었을 것이다.

 


 좀 더주의를 기울여보면, 여인의 어깨가 불균형하다. 이건 비율이 안 맞는게 아니라, 오른쪽을 살짝 뒤로 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보는이의 상상을 유도한다. 어찌보면 앙탈을 부리는 걸 수도 있고, 수줍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언제든 여인이 그대로 돌아서 화면밖으로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안타까움까지 느끼게한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없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상태로 보이기도 한다. 기억하자. 이 그림을 보는 것은 사내들이다.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여인이라니, 얼마나 두렵고 애가 타는가.





 신윤복, 이 형님은 요즘 세상에 태어났었다면 여성 패션디자이너가 되든지, 천채 패션 화보작가가 되었든지, 아무튼 , 아름다운 여인네들이 득실대는 곳의 유명인사가 되었을 것이다. 너무 잘 알려진 것처럼, 그의 그림은 당대의 미의 정석을 화폭에 담아주었다. 복식학자들에겐 참 고마운 인물일 것이다.

 완벽한 상빈하후의 실루엣과, 그 균형을 완성하는 큰 트레머리는 정말 매력적이다. 뭐, 다른 아저씨들이 그린 여인네의 치맛자락도 가끔 보지만, 이 형님처럼 맛깔나고 아름답게 표현한 건 보지 못했다. 한껏 부풀어 오른 치맛폭과 맨질맨질하고 새까만 색이 탐스러운 트레머리는, 볼 수록 감탄사를 자아낸다.




  
 의상으로 넘어가버린 지금, 현대인으로선 바로 알아채기 힘든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잘 생각해보아라. 조선은 상공업이 발달되지 않은 나라였다. 마님의 가체 하나가 집채 정도의 가격을 하던 시절이다. 신윤복이란 이름을 들어보았다면 이미 그가 기생들을 그렸다는 것을 알고 있을테고, 그럼 이 기생이, 가발도 사고, 노리개도 사고... 어쨌든 보기좋게 치장할 정도의 재력은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도가 되려면? 그러니까, 천민 출신의 여인이 이 정도의 재력을 갖출려면 답은 하나뿐이다. 상당히 유명한 기녀였을 것이고 재주든 아름다움이든 받혀주니까 양반들이 돈다발을 던져줬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리 생겼다 할지라도 당대에는 미인이 맞았을 것이다. 린지도 저 시절에 태어났으면 한 가닥했을련지도 모르겠다. 아쉬운대로 서방세계 투어나 갈까-





 까칠한 고발쟁이었던 윤복님은, 어쩌면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시 양반들의 꼬라지를 쌍심지 켜놓고 지켜보던 이 화가는 여기서도 독설을 뿜고 있을 수도 있다.

 천출의 여인이, 노리개도 달고, 탐스럽게 머리까지 올렸으니, 양반들이 기방 곳곳에 전두를 쥐어주고 다니는 세상이다. 라고 말을 하는 걸지도. 뭐 , 그렇다기에는 미인도에 나오는 여인이 좀 수수하긴 하다. 하지만, 이미 한 여인을 주인공으로한 저런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충분히 위화감이 넘친다. 풍속도를 보여주던 다른 그림보다 더한 음모가 느껴진다.
 '바람의 화원'이라는 소설과 드라마의 모티브가 되었던 '윤복이형 남장여자설'이 나올법하게, 이 천재는, 여자를 하나의 대상이자, [인격체]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것도, 아무리 대가댁 마님을 그리는데 사회적 제약이 있었다 쳐도, 다른 누구도 아닌 기생을 [사람]이자 (남성중심)'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만들어놓았다.



 어쩌면 굉장히 탁월한 선택이었다. 먹고살기 바쁜 논밭 아낙네들이나, '집안'이 되어버린 양반댁 여인들에게는 개인과 인격에 대한 의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충족시키는 것은 역시 자유로운 삶을 즐기고, 남성과 공식적으로 동석 할 수 있는 기생들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한국의 기생들은 일반 창녀들과 다르지 않았던가. 재주만 뽐내는 예기와, 시화로 양반들의 기를 죽이는 지성, 심지어 몸파는 천출 주제에 수절까지 하는 것이 우리네의 기녀들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음모론은 방바닥 아래에 숨겨두고,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면 멋드러진 트레머리 아래로 동백기름과 참빗으로 곱게 빗은 정갈한 앞머리가 보인다. 이것은 표면적인 앞모습일 뿐이다. 신윤복은 여기서 여인의 에로티즘을 극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훌륭하고 섬세한 장치를 하나 더 발견한다. 단정한 앞머리 보다는 왠지 시선이 자꾸만 다른 곳으로 가려한다. 여인의 귀 뒤로 나풀대는 잔머리, 그 보드라운 촉감은 새하얀 목덜미 위까지 보송하다.  그렇게, 시선은 다시 여인의 목에 머문다. 이 뽀얗고 여성스러운 신체부위는, 당시 노출이 허용되었던 몇 안되는 곳이다. 그 살결이 얼마나 보드라울까, 남성의 것과는 다른 저 곡선이 얼마나 눈부신가. 하나씩 살펴갈 수록 참 깨알같이 아름답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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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4 Trackback 0
  1. 명태랑 짜오기 2011.03.29 22:38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안녕하세요. 미술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우리 조상들은 서민들의 생활모습에 관심이 많았던 같습니다. 미인도, 춘화 등 지금 보면 그 시대의 모습을 상상활 수 있으니까요

    • Lynzi Cericole 2011.03.30 06:5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이런 그림들은 비교적 최근의 것들이에요~ 실학이 들어오면서 풍속도가 자리잡을 수 있었죠:) 즐거운 하루 되세요!

  2. 빨간來福 2011.04.07 07:44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미인도 하면 전 예전에 어린이의 취미의 1/3을 나누어 갖던 우표수집이 생각납니다.저도 열렬한 stamp kid 여서 이 미인도우표가 나왔을때 줄서서 기다렸던 생각이 납니다. 그게 오래전이네요. 1978년 이야기군요. ㅎㅎ

    • Lynzi Cericole 2011.04.07 09:1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ㅋㅋ수집 취미있으셨군요- 매력적이죠... 줄서서 기다리는거라- 저한테는 생소한걸요? 와- 그때의 우표는 남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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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화를 익히는 혼돈 그리고 그로 인한 수치심




 다른 문화권으로 옮겨가는 것의 과정에서 모두가 겪게되는 가장 큰 부분은 바로 [규칙의 변화]다.




 사람 사는 모양이 다 비슷하다지만, 문명이 발전하면서 인간이란 존재는 각기 다른 규칙들을 만들어갔다. 인간이 만들어냈지만 어느새 규칙이 먼저고 인간이 그에 맞춰가는 입장이 되었다. 보통은 나면서 일정한 규칙을 익히고 그 문화에 맞는 어른으로 성장을 한다. 문화 마다 그것을 익히는 과정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문화 규칙은 '수치'를 통해 배우게 된다.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부모가 체벌을 한다든지, 어긋나는 행동을 한 사람을 향해 수치심이 느껴지는 반응으로 간접 학습을 시키거나, 또래 사이에서 서로 약올리거나 창피를 줌으로 그 문화의 구성원으로서 해야할 행동을 자연스레 익히게 한다.




 그런 과정을 겪은 아이가 어른이 된다면 그 문화 규칙이 체화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 때, 만약 성인이 된 이 아이가 외국, 혹은 다른 문화권으로 나가게 된다면?



 우선은, 문화 충격과 충돌이 일어난다. 그 나라의 규칙을 알게되는 시행착오를 겪게 되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에 대한 혼란을 느끼진 않는다. 주변 세계에 대한 혼돈 또한 없다. 그저, "여긴 이렇구나"의 선에서 주체적으로 그 문화를 익힐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아이의 경우 많이 다르다.


 아이란, 성인이 되기 전의 당계이자 성장이 덜 된, 자아가 온전히 이루어지기 전의 상태이다. 아직 주변의 것으로 학습을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규칙이 생길 때, 아이는 주체적으로 "아, 여긴 이렇구나"하고 학습을 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화 시켜버린다. 어느새 그 규칙은 아이를 구성하는 한 조각이 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많은 TCK들은 두가지 이상의 문화를 경험하거나, 넘나드는 삶을 살아간다. 어느정도 성장한 아이라면 이제 그 상황을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알겠지만, 어린 아이의 경우 어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혼란을 겪게 된다. 저쪽 문화에서는 어른이랑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해야 바른 아이였는데, 이쪽에서는 무례하고 발칙한 아이가 되어버리는 경우처럼, 극단적인 상황을 겪기도 한다. 대부분, 이로 인한 혼란은 어른이나 주위 사회의 무지에 의해 가중된다.




 관념적인 이야기는 여기까지고, 린지가 겪은 일화 두 개를 소개해보겠다.





 첫번째 이야기_



 린지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완벽한 미국식 체계속에 있다가 중간에 영국인 학교로 옮겨갔다. 학교에 간지 셋째 날이었다.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무언가를 할 때 철저히 선생에게 정중하게 허락을 받고 해야했다. 게다가 영어도 미국식 영어를 사용했다. 어쨌든,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에 밖에 있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져 선생님에게 가서 정중히 허락을 구했다.



 "May I go to the bathroom?"



 '밖'의 활동을 하는 시간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거기다 선생님의 감시 밖의 영역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이 그래야한다고 생각을 했다.



 서있던 남자선생 둘이 서로를 보고 피식 웃더니, 아프리카인 선생이 잔뜩 수치심을 주었다. 놀리긴 놀리는 것이었지만, 나의 발음과 행동으로 미국식 생활이 티가 나 분명 수치심을 느낄 만하도록 이야기를 했다.



 "Bathroom? To take a bath?"(목욕실? 목욕하러 가게?)

 샤워하는 시늉을하며 잔뜩 웃었다. 새로 전학 간 학교라 안그래도 낯선데, 거대한 어른 두명이 그런식으로 내려다보면 상당히 위협적이다. 나는 직접적으로 '소변을 보고싶다'고 말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며, 화장실이란 곳에 대한 다른 단어를 알 질 못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한참을 그러고 놀리다가 선생님이 ,


 학교에는 "Bathroom목욕실"은 없고 "Toilet" 혹은 "Loo"가 있다고. 그리고 화장실 정도는 알아서 가야지 일일이 보고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렇게 큰 사건은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그 흑인 선생님의 전반적인 태도와 그 상황속에서 린지는 심한 수치심을 느꼈다.
 



( 린지의 인생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흑인은 이 선생님과 외국에 처음 나갔을 때 린지를 괴롭혔던 상급생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린지는 인종주의가 아님에도 흑인을 마주하면 잔뜩 얼어버리고 머리가 하얘진다.)






 두 번째 이야기_


 이건 아주 오랫동안 밝히지 않았던 아주아주 숨겨둔 이야기지만, 여기서 풀어보겠다. 린지는 어릴적 하와이에 살았었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아이답게, '훌라'라는 전통춤을 배웠다. 반에서 어린 축에 속하면서도 우등생으로 발표회 때 앞줄 가운데쪽에 설 수 있을 만큼, 재미도 붙이고 자부심도 있었다. 당연한 것이, 어린 린지의 정체성 속에 하와이라는 땅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하와이인'으로서 그 춤을 잘 춘다는 것은 굉장힌 자랑이었다. 어른들이 있는 곳이라면, 재롱으로 나의 춤을 보고싶어했으며 나는 자부심을 갖고 훌라를 췄다.

 마지막 발표회날의 액자사진은 훈장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몇년이 흐를렀다. 그 사이 린지의 가족은 하와이를 벗어나 유럽에서 살고 있었다.
 

 거실에 그 발표회 사진이 있고 , 훤히 사정들을 아는터라 어른들은 내게 여전히 '훌라'를 보여달라고 했다. 좀 녹슬기야했지만,
춤을 출 기회가 있으면 여전히 기쁘게 보여드렸다. 그러던 어느날. 손님들이 집으로 돌아갔고, 린지는 그날 어김없이 훌라를 추었었다.


 "어디 그렇게 어른들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어 창피스럽게, 이제 하지마."

 엄마의 말이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내가 한 일이 부끄러운 일이었다며 수치심을 주었다.



 자랑스러운 하와이의 혼이 담긴 그 춤은 그 순간 한낱 '엉덩이춤'으로 전락해버렸고, 자부심이 깃든 그 사위는 '창피스러운 짓'이 되어버렸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이후로 린지는 훌라를 추지 않았다.


 훌라 그저 추지 않은 것이 아니라, 훌라를 췄다는 그 사실 자체가 너무 부끄러웠다. 어느 정도였냐면, '하와이에 살았다'라면 농담식으로 '훌라같은거 췄어?'라고 할까봐 그 이야기도 안 꺼냈다. 행여 하와이에 살았다 할지라도 , 훌라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엄마가 거실에 내놓은 춤추는 사진을 전부 방으로 가져들어가 옷장 깊숙히 보이지 않는 곳에 넣어두었다.

 한술 더 떠, 하와이를 벗어난 곳에서 '훌라'라는 신성한 춤에 대한 시선이 린지의 그 부끄러움을 가중시켰다.


 그 때 받은 수치심이 너무 강해 아직도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훌라라는 춤은 '야한 춤'이 아니라, '엉덩이'가 아니라, 정신이요 혼이요 아름다운 하와이고 [나의 일부]였다. 그런데 그것이, 한순간에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


 

 린지는 TCK로서 다른 문화권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새로운 규칙을 받아들이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규칙을 버려야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대개 엄청난 수치심을 겪게 된다. "수치심 쯤이야, 다 커가는 과정이야." 흔히 어른들은 이렇게 말하지도 모르겠지만, TCK들이 겪는 수치심은 약간의 잘못, 틀림으로써 받는 수치심이 아니라, 분명 옳은 일을 했는데, 그 옳은 일이 "여기"서는 옳지 않다는 충격에서 강타하는 좀 더 근원적인 수치심이다.


 심지어 존재 자체에 대한 수치심이 되어버리고, 아이의 자아 자체에 타격을 주게 되기도 한다. 이런 사건으로 인해 심하게 소심해진다든지, 지나칠 정도로 내성적이 되고, 사람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린지 정도면 괜찮은데, 더욱 잦은 이동과 잔인한(?) 주위 환경으로 더 강한 '수치심'을 감내야하는 아동 중에는 이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 수가 없어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한 행동에 언제 수치심이 날아들지 모르는데, 맘편히 사람 앞에 나서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TCK들을 양육하는 부모나 교사들은 이 점을 알고, 수치심을 이요한 교육보다는 "여긴 이래,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돼"식으로 조곤조곤 설명을 해주었으면 한다. 아이가 '잘못' 행동했을 때도, 혼을 내기보단 혹시 이것이 가치관이나 문화 경험으로 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아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눈높이를 맞춰준다면, TCK자녀는 자신감있고 자연스럽게 문화를 받아들 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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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emilla 2011.03.27 08:48 address edit & delete reply

    에효... 그 선생 정말 인간이 못 됐네요....

    어른들이 어린이를 보호할 줄 모르는게 참 비극이예요..

    저 아는 교포 친구는 자기 삼촌한테 뺨 맞은 적도 있어요. 오빠를 이름으로 부른다고...

    • Lynzi Cericole 2011.03.27 16:4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그걸 자각을 하지 못한다는데서 문제가 일어나는 거죠. 특히나 그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아프리카인이었는데, 그쪽 교육방법 자체가 수치심을 많이 주는 문화잖아요.

      뺨을 맞다니... 충격이 크셨겠네요 친구분... 오빠를 이름으로 부른다고 그런다니, 너무하네요ㅠ 조선시대도 아니고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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