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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K/ 제 3 문화 아이들/한글

<밥>에 깃든 여유, 그 아쉬움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마당이 틀려있는 티비.



 주제는 밥상머리에서 지내는 시간이 37분도 안 된다. 그 시간의 가족간의 대화와 화합의 장으로 만들어야하지 않겠냐-하는 내용이었다.



 한국과 서양의 식문화 모두를 경험해 왔는지라, 내가 의식하고 있던 주제이기도 하다.


 

 어릴 적 나는 식사시간이란 아침 20분, 점심 40분, 저녁 1시간 이상 정도로 생각했었다. 물론,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를 언급하는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 살았는데, 그 분위기 특성상 식사만큼은 가족이 모여서 여유롭게 즐기면서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한국에 오고 난 후로는 이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여전히 식사 속도를 내지 못하는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뚝딱’ 밥을 먹기 시작했다. 체감하는 삶이 바쁘기 때문이다. 티비 속의 세상도 부산스럽고, 길가의 사람들도 부산스럽고, 일도 부산스럽고 ‘근면’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행동을 바꾸자는 말이 나오기 전에, 인식부터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



 조금은 3자의 입장에서 느낀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신경 쓰는 민족이다. (이 말에 대해선 순순히 인정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역할을 나눠가진다. 흔히들 일본 사람들이 겉과 속이 다르다고 자부심을 갖고 욕(?)하는데, 한국 사람도 만만치 않다. ‘뒷담화’ 문화에 잘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다 그렇지 않겠지만, 대개 내가 느낀 유럽인들은 그냥 ‘넌 그러냐?’하고 미국인들은 대놓고 얼굴에 소리 지르는 식이었다. 난 이래. 가 분명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욕한 사람한테도 잘 보여야하고 욕할 사람한테도 욕을 들어주는 자들에게도 그 앞에선 꾸며진 모습을 한다. 이게 밥상이랑 무슨 관련이냐...






 관련이 있다. 그만큼 보여지는 것이 성향이 되어버리다 보니, 감시자가 없는 상황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역할극을 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선 부지런한 것이 미덕이다. 효율은 오히려 나중 문제처럼 느껴진다. 일을 계산적으로 잘 처리 해놓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 꼴을 못 보니 말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바쁜척’을 해댄다. 스스로 정말 바쁘고 여유 따위 없는 성실한 사람이라 여긴다. 여기서 대표적인 여유의 상징 -밥-이 희생된다.





 나는 음식맛과 식사 할 때의 그 분위기를 음미해가며 하나의 휴식이자 즐거움으로 밥상에 임한다. 그래서 그런가, 지인들은 가끔 내가 수저를 드는 모습을 보고

‘신기하게, 린지가 먹는건 다 맛있어 보여. 참 맛있게 먹는다.’

 고 하곤 한다.
 
 맞다. 나는 최대한 맛있게 식사를 하려한다. 사람 사는데 뭐 있나.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거지. 거기에 인류역사상 가장 발달한 과학이 요리라는 걸 생각하면 이것이야 말로 인간에게 큰 기쁨을 주는 요인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선가 한국에서 만난 식사 풍경은 이게 아닌 듯싶다. ‘먹기 위해 사냐?’라는 핀잔처럼 밥에 신경 쓰는 사람은 마치 미련한 하급의 존재처럼 치부된다.



 그 결과 밥을 먹는 과정과 그 행위가 제거 되어버린다. 먹기 전. 먹은 후.로 뚝딱 나뉘지 밥을 먹는 과정에 대한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미약해 보인다. 흔히 식당에 가면 보이는 모습이 준비 땅!처럼 음식이 나오면 그저 말없이 한순간에 흡입을 한다. 잠시 후 한참의 푸짐한 인심을 즐긴 후에 불룩해진 배를 두들기며 ‘즐거운 식사를 했다’ 만족스런 얼굴을 하고 집으로 간다.


 

영화, <김씨 표류기>中


 왠지, 그저 음식이 있다. 그리고 음식을 먹는다(= 나름의 사치). 그것 자체로 행복감을 느껴버려 음식은 많으면 많을 수 록 좋다-로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지나치게 시니컬하게 관찰한 것이라면 죄송스러운데, 정말. 그래 보인다. 먹는데 한 맺힌 사람들 같다. 가끔은 사람 위에 음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름 식도락가라 하는 사람들도 ‘먹기 위해 먹’지 진정 하나의 즐거움으로 맛, 서비스, 분위기, 함께 있는 사람, 그 날의 기분 등을 복합적으로 즐기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밥하나 먹는데 뭘 그렇게 인생사를 다 끌어들이느냐.




 바로, 밥 하나. 먹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좋은 요리라 하더라도 불편한 상태로 먹으면 그 좋은 향신료 거의 다 버린다. 반면 한겨울 길가 포장마차에서 서서 떡볶이를 먹어도 친구와 먹으면 그 ‘맛’은 어떤 요리 부럽지 않게 한다. 맛은 뭉쳐있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 등등의 물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미각’을 온전히 활용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여유 또한 필요한 것이다.







 아침에 쓰는 글이라 정신이 없는데, 앞에 ‘보이기 위한’ 이야기를 꺼냈듯이 나는 이 원인이 보여지는 모습에 치중하는 인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정신적으로 마음으로 즐기는 여유가 밥상에 없는 것 같다. 남에게 보이는 여유에 신경 써 바쁜척을 하다보면 어느새 진짜로 자신이 바쁘고 여유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삶에서도 그대로 행한다. 일단 바쁘니까. 난 .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더 정신적인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연습을 했으면 한다. 일하러 바쁘러- 기계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삶을 살아가며 세상에 있는 한 떨기의 아름다움이라도 느끼기 위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고. 그것을 실현하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행위 중에 -밥-이라는 소중한 상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느림보 식사를 하라는 건 아니다. 나는 이렇게 길들여졌을 뿐이다. 단지. 조금 더 여유롭게, 즐겁게 , 성의를 다해 자신을 위한 식사를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걱정하는 것처럼 여유를 부리고 즐거워한다고 ‘게으른 티’가 나진 않는다. 건강을 위해 억지로 식사시간 길게 잡을 필요도 없다. 알아서 속도는 흘러가고, 그 여유로 자신 + 함께 밥상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모두가, 조금은 더 즐거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아침에 생각난 소소한 주절임.










PS:

아침마당의 주요 주제는 밥상에서의 대화였는데, 씹는데 불편한 한국의 음식과 기다리는데 익숙치 않은

ex)입에 뭐가 있는데 대화는 이어가야 되겠고 상대방은 바로 답을 원하고 나도 답답해서 입을 열고 싶고 근데 밥은 있고 그래서 소화가 안 되고-

라든가- 하는 현실적인 측면도 분명 있다. 정말 사람 가만 안두는 현대사회와, 너무 분화돼서 가족끼리도 공통 화제를 찾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노력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