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5.24 대한제국의 의민태자(영친왕), 역사에 빼앗긴 인생과, 그의 정체성 II(15)
  2. 2011.05.22 대한제국의 의민태자(영친왕), 역사에 빼앗긴 인생과, 그의 정체성 I(8)
  3. 2011.04.09 한국인이, 한국인으로, 한국에 대해 알아야할 이야기_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24)

대한제국의 의민태자(영친왕), 역사에 빼앗긴 인생과, 그의 정체성 II





 날씨가 저기압입니다.

 덕분에 린지도 폐인의 상태입니다.

 어제 저녁부터 치오가 기운이 없어서 신경 쓴 탓에 더욱 아.....
병원 가봤는데 일단은 괜찮고 며칠 지켜보라는데, 제발 , 아침에 우는거 때문에 혼낸걸로 삐쳐있는 것 뿐이었으면 좋겠습니다ㅜ_ㅜ












 어린나이에 외국에 건너가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잘 적응 하겠거니"의 심정이랄까.


 사실, 인간은 억척스러운 생물이기 때문에, 물-공기-먹을 것-다른 인간, 만 있으면 여차여차 잘 산다. 그러니 가족 단위로 해외에 나가는 사람들은 흔히 아이들이 얼마나 큰 충격을 묵묵히 견뎠는지 알기 힘든 경우가 많다.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다만 무의식 중에 남아있을 뿐.)




 저번에 이어 의민태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한다.

 >>대한제국의 의민태자(영친왕), 역사에 빼앗긴 인생과, 그의 정체성 I


 ~~~

 그래서 전편에서 나온 것과 같은 경로로 일본에 갔다.


 11살의 나이에 가족과 떨어지는 경험을 하는 건 슬펐겠지만, 친할아버지처럼 대해 준 이토 히로부미도 있었고, 일단은 일본의 왕실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적응하고 '왜놈'처럼 잘 살지 않았겠냐-하는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민태자가 직면한 상황은 너무 낯설었다.




 조선궁의 특성상, 많은 일들이 궁녀들의 손에서 이루어진다. 의민태자도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는 유모의 손에서 자랐고, 주로 황실의 여성 가족들과 지냈을 테고 생각시들과 뛰어놀았다. 이 부드럽고 안락한 분위기에서, 일본으로 간 그는 철저히 남성들의 손에 맡겨졌다.
 수행원과 경호원 모두 남성이며, 그를 가까이에서 '모신' 이토 히로부미도 '남성의 극치'를 자랑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말씨도 행동도, 그를 보는 눈빛도 모두 달랐다. 강보에 쌓여있다가 복도에 내던져진 아이의 기분이었을까.


 그를 둘러싼 성별의 변화를 시작으로 의민태자는 세계가 뒤집히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문치주의 국가인 조선의 교육과 다른, 사관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게 되었다. 이 분위기 차이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상당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윤리'를 강조하는 세상에서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사회로 넘어갔으니.




 한편으로는 이 때의 훈련이 앞으로 닥쳐올 험난한 인생을 버티는 끈기를 길러줬을지도 모른다고 어느 책의 저자가 말했다.




 워낙 유순한 성품의 소유자에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 그런 강력한 정신력 없이는 진즉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의민을 TCK의 렌즈로 조명해보자면,


 그는 고국의 교육체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고법을 익혔다. 당시 너무 [문] 위주로 돌아가느라 있는대로 약해져버린 조선의 현실에, 그에게 기회가 주어졌다면 훌륭한 업적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실제 그를 만난 이형근이라는 사람이 쓴 의민태자에 대한 책 중에는 , 대한제국이 일본 앞에서 무너져버린 것이 문존무비 사상으로 인한 약한 국력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물론, 여기서 미묘한 문제는 그가 일본 사람들 틈에서 자랐기 때문에 일본측이 행한 비열한 조작 한국인이, 한국인으로, 한국에 대해 알아야할 이야기_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그런 발언을 했을 수도 있다.
 



 이런 발언으로 많은 TCK들이 비TCK인 고국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오해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설령. 그가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 말을 했다면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일본이 아무리 그런 말도 안되는 쇼를 행했어도, 한국의 국력이 강했더라면 (사관학교에서 배운 군국주의 정신처럼) [밀어버리면] 그만이었을텐데, 그런 힘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고, 완벽히 갖추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 말이었을 가능성에 더 무게를 싣고 싶다.




 다시 의민태자의 일대기로 돌아와서, 


 
 그런 그의 결혼마저 일본의 놀아난 분위기였다. 고종은 이미 명성황후의 집안에서 뽑은 민갑완이라는 규수가 이미 의민의 배우자로 정해져 있는 상황이었는데, 일본은 왕족인 니시모토 마사코(이방자)를 '알아서' 준비해 결국 의민과 혼인을 시켰다. 일본측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고종이 쌍수들고 환영이라도 한 것처럼 표현을 했다. "일본 왕실과 한 가족이 되었구나"라는 감상에 감격을 했다는 것 처럼. 뭐,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 쯤은 누구나 알 것이다. 민씨 집안의 처자를 정혼자로 낙점할 만큼 명성황후에 대한 생각이 각별했던 고종이, 칼에 피를 묻힌 일본과의 결혼을 즐거워했을 리는 만무하다.



 안타까운 비화로는, 한 번 태자저하와 '연이 맺어졌다'는 이유로, 민갑완은 평생 수절을 했다는 사실이다. 조선측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배우자를 준비해뒀는지 감이 잡히는 부분이다.




 의민태자의 기구한 인생은 계속 되었다.


 해외 여행중에 상하이의 독립운동가에게 납치될 뻔하고, 간도 대지진 때 '조센진'이라는 이유로 신변이 위험해 일본 왕궁에서 겨우 피신을 해야하는 일도 있었지만,



 가장 끔찍했던 사건은 1922년에 일어났다.


 일본에서도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이방자여사(의민태자비O)와 함께 조선을 방문했을 때였다. 당시 한 살 정도된 아들 ''을 동행했고, 여러 왕족을 찾아뵙고 다시 한국식으로 결혼식도 올렸다. 일본여자와 결혼을 했지만, 황실을 잇는 인물로 도리를 하러 왔으니 나쁘지 않은 방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극은,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날 밤 일어나고야 말았다.


 바로 '진'이 새파랗게 질린 채 우유를 토하더니 그대로 숨지고 만 것이다.


 운명의 장난 같은 사건이었다.

 '일본과 한 핏줄'이 되었다는 이유로 한국인이 저지른 일이었을 수도, 조선의 대를 끊어놓겠다며 일본인이 그랬을 수도, 혹 , 우연일 수도 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진이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책에 나온 그 때에 대한 태자비의 심정 글은 대충 이러했다.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니지만, 한국의 대를 이을 아이가, 그나마 조상들이 계신 한국땅에서 최후를 맞이한 것을 작은 위로로 받아들여야하는 것인가. 하고.
















 너무 무거운 것 같아 이번에도 짤막하게 끝내겠지만, 지난 번처럼 시간 안 끌게요ㅜㅜㅜㅜ

 다음은,

 의민태자의 생존법이라든지, 이후의 환경. 그를 유추해볼 수 있는 행적들을 포스팅하고 의민태자에 대한 내용은 마무리 할겁니다^*^





TCK포스팅_

- 대한제국의 의민태자(영친왕), 역사에 빼앗긴 인생과, 그의 정체성 I
- 등교가 입국인 아이들, '자국'에서 다문화 경험! 국제-외국인 학교 아이들
#4 TCK에 대한 이해가 중요해진 이유, 허공에서 살아가기
- 제 3문화 아이들의 시대, 문화 홍수 속에 살아가기

- 밥 먹을 때 티나는 글로벌한 그대、음식 앞에서 들통나는 '우리들'
- 제 3문화 아이라면 공감, 외국에 살았거나 본인이 '이상한데'서 산 경험이 있다면?




다른글_

- 우리도 한국의 주민입니다옹 ^ㅇㅅㅇ^
- 한국인이, 한국인으로, 한국에 대해 알아야할 이야기_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 길가다 '팬티'만 입은 중학생을 보다
- <밥>에 깃든 여유, 그 아쉬움





 













  
Comment 15 Trackback 0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05.23 07:36 address edit & delete reply

    영친왕이 비화가 워낙에 많아서..ㅜㅜ 얼마전 일본인 사학자가 한국의 국내학회에서 이방자와 영친왕의 결혼이야기를 논문으로 발표한적이 있습니다. 뭐.. 일본 주류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이었지만, 그 때 일본 사학자는 일본의 정치적인 의도가 아닌 이방자여사의 어머니가 개인적으로 데라우치에게 청탁을 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료부족으로 인해서 논문집에는 안 실릴 것 같기는 합니다만...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이야기는 드라마 된적도 있을정도였으니..ㅠ 그러고 보니 이구씨가 돌아가신지도.. 만5년이 다되어 가네요.. 조만간 홍유릉 묘역에서 행사가 있겠군요...

    • Lynzi Cericole 2011.05.23 13:48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정작 본인이 남긴 기록이 없다는 말이 제일 안타까워요. 개인적인 청탁이라... 신선한 관점인데요ㅎ 일본측에서 드라마화 됐던건가요?? 왠지 궁금해집니다.

  2. 우진이 2011.05.23 21:47 address edit & delete reply

    흥미로운 포스팅 잘 봤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친왕께서 정말 일본의 의도대로 그렇게만 했어야만 했나라는 생각입니다. 용기 없는 왕이 아니였을까요? 조금만 더 영친왕이 용기있는 행동을 했으면
    저희의 역사도 바꿨을텐데 말이죠.
    나라도 빼앗긴판에 정말 말 그대로 꼭두각시처럼 살다 가셨으니 어떤 기록을 했겠어요. 정말 다시는 일어나선 안될 치욕적인 역사입니다.

    • Lynzi Cericole 2011.05.23 22:01 신고 address edit & delete

      대한제국의 역사를 치욕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의 자아감에 금이 가는면도 있어요^^ 우리가 못나서 당했던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합니다.

      의민태자의 경우, 일본측의 의도 보다는, 워낙 성품 자체가 점잖은 스타일인데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눈에 띄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받았더라구요... 그걸 그대로 지킨 것이고요.

    • 우진이 2011.05.24 00:19 address edit & delete

      역사스페셜인가 하는 프로그램봤는데요.
      일본인들이 영친왕 결혼시기가 무슨 파리에서 무슨 세계협의회(정확히 기억이..)가 있었데요. 그 시기에 맞쳐서 한 보여주기식 결혼이라고 하더라구.(우린 이렇게 조선과 잘 지냈다)
      그때 당시 우리 조상들이 영친왕께 다시 한번 실망한 대목이죠. 영친왕.나라가 뺏앗긴 시점에.자기의 목숨을 위해
      조용히 살기만했어야만 했는지 의문입니다. 마지막까지 침묵하시구 그랬던 것이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05.24 06:07 address edit & delete

      역사라는 것이 왕이나 태자 개인의 용기있는 행동 하나만으로 바뀔 수는 없죠. 대한제국의 멸망은 내부적으로는 고종의 개혁에 기득권을 뺏긴 기득권 세력의 반발+외부적으로는 아시아의 패권을 일본에 맡기고 식민지를 늘려 이득을 나누어 자기들끼리의 리그를 벌이려고 했던 제국주의 열강의 의도적인 묵인과 강탈에서 보아야 합니다.


      고종이 황실비자금을 해외에 빼돌려서 독립운동자금으로 제공했던 일이라든가, 순종의 동생 의왕이 중국으로 탈출하여 독립운동에 합류하려 했던 사실이라든가, 의왕의 차남 이우 왕자가 중국에서 독립운동가와 접촉하려다가 일본으로 다시 송환당해 히로시마 원폭이 터지던 때 피폭당해 죽었다던가 하는 일들은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대한제국 황실의 독립노력이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이승만이 미국을 등에 업고 들어오면서 황실부활을 막기 위해 의민태자의 귀국을 막고 황실재산을 국유화하는 한편 황실무능론을 계속 퍼트렸기 때문이죠. 황실이 무조건 손 놓고 쥐죽은 것처럼 살기만 한 건 아닙니다.

    • Lynzi Cericole 2011.05.24 06:3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우진이님~ 저도 조금 봤어요ㅎ 보여주기+ 평등한 관계는 아니라는 것 까지 보여주는 것이죠. 조상들이 (현재의 한국사람들도 그렇지만) 너무 감상적으로 생각한 대목인 것 같아요. 혈혈단신 볼모로 잡혀있는 입장에서 몇년에 걸쳐 완전 정신적 무력화를 당했는데, 과연 거절 할 힘이 있었을까요?

      의민태자의 상황이 되어보세요. 겨우 초등학생 때 부모에게서 잡혀가, 주위의 눈초리를 받으며 성장을 했습니다. 그의 기질이 화통했던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조용히만 살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포스팅에 의민이 이룬 '조용한' 업적들을 다루려 했는데, 기다려주세요^^

    • Lynzi Cericole 2011.05.24 06:3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카시아파님, 그렇죠. 역사에 부각된 개인은 어떤 의미에서는 TPO가 맞아 떨어진 경우랄까요- 대한제국에 대한 교육이 너무 부족한 느낌입니다. 저도 학교 졸업하고서야 책을 통해 조금씩 알게되고있는 경우니까요.

      식민사관으로 무능한 역사가 되고, 이승만 대통령이 한 번 더 덮어버리고 하는 바람에, 시대를 잘못 탄 그 자체는 상당했던 지도자가, 아무것도 못한 찌질이 왕처럼 되어버렸죠...

      자신의 나라에 대한 자라나는 학생들의 관심과 자부심을 위해서라도, 대한제국 부분은 교과서에 보다 자세히 다뤄져야합니다. 특히나 , 일본이 한것으로 되어버린 고종의 근대화 업적들이, 사실 우리의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가르쳐야합니다.
      학창시절의 기억으로는 , 서울에 남아있는 '일본이 세운 양식건물'들의 튼튼함과 견고함을 칭찬하는 (그것만은 배워야한다~) 소리를 꽤 들었는데, 사실상 고종이 설계 다 해놓은거 일본이 마지막에 이름만 얹은 것들이죠...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3. 우진이 2011.05.23 21:49 address edit & delete reply

    P.s 저희 아버지 曰 : 일본 조상들이 얼마나 악독했으면 지금 일본 사람들이 저렇게
    벌을 받겠냐. 역시 벌을 짓고살면 안돼..쯧쯧..^^

    • Lynzi Cericole 2011.05.23 22:02 신고 address edit & delete

      하하...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한국에 미칠 영향도 무시하면 안되죠^^;

    • 우진이 2011.05.24 00:13 address edit & delete

      저희 피해보다..일본당국은 얼마나 힘들겠어요.저희야 그에 비하면야..그리고 저희나라는 현재 연일 코스피지수 최고 수치를 기록하며 상종가중입니다.ㅋ

  4.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05.24 06:08 address edit & delete reply

    영친왕과 이방자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 드라마는 "무지개를 이은 왕비"였던가 "무지개를 건넌 왕비"였던가 그런 제목이었어요. 철저하게 이방자를 이상화하는 작품입니다. 이방자역에 제가 좋아하는 칸노 미호가 나와서 보긴 했는데 기대를 배반치 않고 어이상실하는 내용이 많았던 드라마죠. 2부작이었던가 그래요.


    이방자는 원래 나가코 일왕비와 함께 일왕 히로히토의 배우자 후보였는데 의사 진단결과 불임의 가능성이 높다 하여 후보에서 탈락했다는 후일담도 있어요. 이방자가 진 왕자를 낳은 직후 진단했던 의사가 해임되었다는 썰도 있었죠.


    반면 애를 잘 낳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나가코 일왕비는 자식을 잘 낳긴 잘 낳았는데 딸만 내리 넷을 낳다가 마지막에야 아들을 낳아서 오랜 세월 가시방석에서 살기도 했습니다. 측실제도의 부활까지 거론되는 치욕을 겪죠. 그녀의 친정아버지는 우리나라 조명하 열사에게 살해됩니다.


    이방자 입장에서는 의사의 말 한마디에 일왕실의 적통 태자비 후보에서 망한 나라의 허울만의 태자비로 전락해버린 것이니(불임이라는 진단이 없었다면 아마 일본 왕실의 다른 왕족에게 시집갔을 확률이 큰 명문 거족의 딸이었습니다) 참 기구한 일이었고요.


    의민태자가 한국방문을 했을 때 민갑완 여사를 궁에 잠입시켜서 합방을 치르게 하려는 음모가 발각된 적도 있었고.....민갑완 여사도 결국 답답한 조선을 탈출하여 중국으로도 떠도는 등 힘든 시간을 겪으셨지요. 역사가 힘들게 흘러갈 때 항상 희생되는 건 여자들의 운명입니다. 슬프게도. ㅠ.ㅠ

    • Lynzi Cericole 2011.05.24 06:43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제가 본 책에도 불임설이 나와있었어요~ 그런데 위의 도플파란님의 글에 나온 청탁설은 정반대되는 의견이라 정말 의민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끝이 없을듯 합니다ㅠ

      제목만 보아도 꽤나 이상화 되었을 듯 합니다만-ㅁ-... 하하, 정말이지 윤리성없이 무언가를 해나가는데는 일본의 재능이 혀를 내두를 정도에요. 개인적으로 일본에서 만들어내는 상품들의 창의력 때문에 좋아하지만, 만화에 은근히 넣는 세뇌라던지, 대한제국을 삼킬 때 행했던 망짓이라든지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합방음모라... 뭔가 처절하면서도 참...여태까지 'his'story였기 때문에 이리치이고, 저리치인 기록이 부각되는 것 같아요.

      좋은 뎃글 감사합니다ㅎㅎ

  5.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05.24 06:38 address edit & delete reply

    아~ 너무 제멋대로의 부탁인지 모르겠는데 혹시 기회되시면 이구 공의 인생에 대해서도 TCK 관점에서 한번 짚어주세요~ ^^

    • Lynzi Cericole 2011.05.24 06:47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제가 제대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ㅠ 이번도 그냥 '역사속의 TCK'소개식으로 진행하고 있는것이거든요ㅎ 자료가 부족해서ㅜ_ㅜ...

      노력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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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의민태자(영친왕), 역사에 빼앗긴 인생과, 그의 정체성 I






 몇달전에 이은, 또는 영친왕으로 익숙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의민태자에 대해 약간 알게 되었다. 오늘, 또 우연한 계기로, 지나가다 틀게된 [역사 스페셜]의 내용이 바로 그에 관한 것이었다.



 익숙하든 안하든, 린지는 이후부터는 그의 올바른 호칭인 [의민태자]로 칭할 것이다.



 또한,

 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방송에서도 대놓고 끄집어내는 [경계인]이라는 말 대신,
TCK로서의 관점으로 그에 대해 부족한 글을 쓰고자 한다.

















 원래 의민태자에 대한 포스팅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많이 일러졌다.




 그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의민태자는 조선의 마지막 세자이고, 고종황제와 순헌황귀비 엄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덧붙이자면 고종이 가장 사랑하던 아들이었다고 한다.




 영친왕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의민태자는 흔히, 조선왕조의 세자이면서 동시에 일본 황실의 일원이었던 신분의 모호함이 낳은 '불편한' 인물로 자리 잡고있다. 지금의 우리는 정서적으로도 납득을 하고 있지만, 그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인생을 살았다. 안타깝게도, 당시의 고조된 조선의 민심속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의민태자가 일본으로 '유학'이라 칭해진 볼모 생활을 하게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다른 포스팅에서 밝혔지만, (한국인이, 한국인으로, 한국에 대해 알아야할 이야기_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고종황제는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을 가졌던(오늘날의 역사는 '자질'이라는 단어로 한정하게 만든다.) 강적이었기 때문에 일본측에서 강제퇴위를 진행했다.


 이 때의 비화를 잠시 이야기하자면, 고종황제의 퇴위식이자 순종황제의 즉위식에, 정작 두 사람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외신들에 의해 자국 1면에 그림을 동반한 기사도 났는데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당시 물러날 이유가 없는 고종은 물론이고, 순종 또한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하며 함께 궁에 있었다고 한다.
 주인공 당사자들이 없는데 식이 진행되겠느냐- 뭐. 당시 일제였다. 무엇인들 못하랴. 고종과 순종의 자리는 [연기자]들로 체워졌고, '퇴위식'은 공식적으로 무사히 마쳤다.








 이에 대해, 고종은 교과서에도 알려져있는 [헤이그 밀사] 사건을 일으켰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이로 인해 일본의 압력만 높아졌다. 이 상황에서, 어차피 불임이었던 순종에게 후사가 없었으니(뛰어난 서예가였던 그의 흐트러진 글씨로 순종황제는 당시 일본측에서 수랏간을 통해 매일 아침 마시던 커피에 타넣은 대량의 아편 사건으로 일상 생활조차 힘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가장 사랑했던 아들, 이은을 [황태자]로 책봉했다. 순종과의 관계를 따지자면 [황태제]란 표현이 맞는데, 고종황제의 아들인 이은에게 굳이 [황태자]란 이름을 준 것은,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황제는 고종 자신이라는 의미를 담은 정치적 승부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의 선택이 썩 현명했다고 볼 수는 없다. 황제로 앉아 있는 순종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고, 급박한 정치적인 상황속에서 31세의 든든한 [이강]에게 태제든 태자이든 , 다음을 책임질 타이틀을 줬어야했는데, 개인적인 총애로 이은을 선택했고, 이것은 사랑하지 않으니만 못했을 저주가 되어버렸다.





 멀쩡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의 나라 군주를 두고서 순종의 사인을 위조해가며 조선을 '통치'하고, 외교문서도 조작해 해외에 뿌린 당시 일본과 조선총독부의 창의적인 발상으로 인해, 대한제국은 황태자를 꼼짝없이 빼앗기고 말았다.




 세자교육에 끔찍한 조선왕실의 전통을 빌미 삼아 ['낙후 된' 조선의 교육이 아닌, 선진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의 최고 교육을 시켜주겠다.]는 명목하에 , 반박 할 여지도 없이, 의민태자는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게 되고 말았다.










 당시 대부를 맡아 그를 데려간 사람은 다름 아닌, 이토 히로부미였다.



 일본의 목적은, 어린나이에 대한제국의 후계자를 데려가 '일본물'을 들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한 친밀감을 최대화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부였는지, 그를 '보살핀' 이토 히로부미는 극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에서 우러난 행실이었다고 믿기는 힘들다. 정복당한 부족 족장의 머리를 들고 행진을 하듯, 기모노를 입힌 의민태자를 옆에 두고 찍은 사진이 대외홍보용으로 뿌려졌다.




 그렇게 해서, 이은은 세자가 된지 일년도 채 되기 전에 1907년,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1살이었고, 그의 곁에는 동궁대부였던 고의경, 시종무관 조동윤, 그리고 끼어서 가게된 외사촌 엄주명만이 있었다.



 일본측에서는 유학이라 우겼지만, 조선황실의 가족들이 아무리 간청을 해도 방학 때 조차 귀국을 할 수 없었던 의민태자는 명실상부한 '볼모'의 처지였다.











 그의 어머니이신 엄씨가 1911년 병사했을 때도, 장례를 위해서 어렵게 4년만에 귀국을 한 그는 '전염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다가가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정서를 이해하면 '그럴 수도 있지'할 문제가 아니다. 오래된 무덤조차 실제 살아있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해 찾아가고 '대화'까지 하는 한국의 정서상, 죽은 사람이라도 '시체'가 아니다. 그 사람 자체로 인식을 했을 것이다. 하물며, 4년만에- 자식이 보고싶어 홧병으로 돌아가셨을 어머니를 앞에 두고 다가가지도 못하게 했다니. 심성을 보았을 때 효심이 지극했을 의민태자에게는 어머니가 더 이상 '움직이지'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혹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7년 뒤, 엄연히 태자였던 의민은, 그를 너무도 아꼈던 아버지 고종의 임종마저 지키지 못하고 떠나보내야했다.







 의민태자의 외로움은 단순 [경계인]이란 단어로 그를 표현한다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더 많은 시간과 실제적인 인생을 보낸 곳이 일본인데, 겨우 어린아이로 떠났던 조선에 대해 사무치게 그리워했을까?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제 린지는 다시 그를 TCK라는 울타리 속의 사람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경계]에 서있는 사람이 아닌, 문화와 문화 사이를 오가며, 그 사이에서 벌어진 새로운 문화에 발을 딛고 있던 사람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하는 것은, TCK들이 '국경'에 서서 이쪽과 저쪽에 발을 자유자재로 걸치는 '박쥐'가 아니라는 점이다. 100%옳은 이미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TCK들이 고국을 떠난적이 없는 비TCK들이 이해하기 힘든 강도의 애국심을 품는다. 




 린지의 TCK게시판의 부제가 [허공]이니 만큼, 그곳은 보이지 않는 땅이고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허공이라는 것은, 그와 동시에 모든 곳에 펼쳐져 있다.





 이런 표현이, 의민태자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는 '혼자'가 아니다.










 전편으로 짧게 끊어 마치면서_



 이방자 여사(정식명칭: 의민태자비)의 <세월이여 왕조여> 내용중에,
의민태자의 책상에 놓인 이상한 돌조각에 대해 묻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그 내용을 옮겨본다.



전하께서는 일본에 와 너무 그리운 나머지, 고종황제께 10살 때부터 일본에 가기 위한 준비기간 동안 있던 낙선재 뜰의 조약돌 몇 개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하셨다고 한다. 맨질맨질 해져버릴 정도로 닳아버린 조약돌은 향수와 외로움을 달래주던 벗이자 장난감이었다.










 

 





TCK에 대한 다른 글 보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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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문화 아이들로 풀어본 재일교포들의 뿌리의식


제 3문화 아이라면 공감, 외국에 살았거나 본인이 '이상한데'서 산 경험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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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도플파란 2011.05.13 06:44 address edit & delete reply

    의민태자는 영친왕 이은이 죽은 뒤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정한 시호입니다..오랜만에 영친왕의 글을 읽어보네요... 영친왕도 그렇고, 덕혜옹주도 그렇고... 2005년에 작고한 영친왕의 아들인 이구씨도 그렇고... 모두들 힘든 삶을 살았고... 기구한 삶을 살다가 삶을 마친 인물이지요.. 이젠.. 기억의 저편으로 살아졌고... 점점.. 잊혀지고 있지만... 이젠.. 홍유릉 구역에서 평안히 지내고 있을지...홍유릉에 가면.. 영원이란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영친왕이은과 이방자 여사의 묘입니다. 그 뒤엔 덕혜옹주와 의친왕 그리고... 그 뒤에는 이구씨의 묘가 있습니다..

    • Lynzi Cericole 2011.05.13 07:1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오랜만이네요ㅎ

      원래 왕명이나 태자 이름은 나중에 지어지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영친왕은 일본쪽에서 한국의 국격을 낮추기 위해 만든 명칭이라더군요. 대한제국은 엄연히 황제의 나라라고 우리가 공표를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정한 의민태자라는 호칭이 맞다고 책에 나와있었네요ㅎ 그렇게 부르고 싶게 되었습니다.

      후... 귀여운 막내딸 같은 느낌히 선한 덕혜옹주의 사진들을 보며 가슴이 아픕니다.

      의민태자에 관한 글을 읽고, 안 그래도 "한번 '찾아뵙'자"라는 기분이 절로 들어요. 스스로에게 잠들어 있던 이런 '한국적인 의식'에도 적잖게 놀랐더라지요. 이미 떠나간 사람인데,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은 어리석은 것일까요ㅎ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 이바구™ - 2011.05.13 14:37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어제 역사스페샬에서 영친왕의 불행했던 과거를 봤습니다.
    그의 불행했던 위치에 가슴이 아프더군요.

    • Lynzi Cericole 2011.05.13 15:5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불행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대표로' 받아서 더 안타까운 것 같아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3. 2011.05.13 15:18 address edit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Lynzi Cericole 2011.05.13 15:54 신고 address edit & delete

      그렇죠...

      어처구니없게 당한 부분에 대해서는 조선왕조만한 경우도 드문것 같아요. 물론, 세도정치로 진작에 무너졌을 왕조였지만, 과거의 성군들에 대한 존경으로 백성들이 유지시켰죠.

      차라리 백성들이 일으킨 일이라면 '순리'라고 생각 할텐데...

      반복되지 않도록 과거를 잘 알아보고 노력을 해야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4. 여울해달 2011.05.13 17:2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어제 이걸 보기전까지는 역사스페셜이 종방된 줄 알았어요.^.^
    여하튼 어제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돌더군요.
    누구에게도 자신의 아픔을 털어 놓을 수 없는 삶을 살았던 망국의 황태자 이야기...
    일본왕족에 준하는 대접을 받으며 몸은 편했을지 몰라도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졌을거라 생각합니다.
    당시 조선백성들도 그렇지만 다른 누구보다 조선의 처지와 왕실의 무능함에 피눈물을 흘렸던 것은 아마도 영친왕 자신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 Lynzi Cericole 2011.05.13 23:57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성품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을거에요...

      다음 포스팅에 이어하려했지만, 일본에서 자리 잡으면서는 사비로 자신의 나라를 위했죠. 전부 소용이 없게되었지만요...
      그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이 너무 끔찍해서 울분을 토하게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는 것 또한 씁쓸해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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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한국인으로, 한국에 대해 알아야할 이야기_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 10점
이태진 지음/태학사

 



최근 제대로 강행하고 있는 일본의 교과서 왜곡문제로 시끌하다.

 기껏 돈 퍼다줬더니 뒷통수 치네 마네- 뭐, 이건 세계적으로 한국인이 들고 일어날 법한 사항이지만.
 



 우선 밝히자면, 기부와 지진 도움, 그리고 역사는 서로 다른 문제다. 휴머니즘으로 그들에게서 역사 문제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했었다면 오산이다. 역사처럼 민감한 사항은 철저히 증거를 바탕으로 풀어가야할 문제지, 셔츠 쥐고 흔든다고 이기는 싸움이 아니다. 그러기에 독도든 역사문제든 일본과 해결을 보고 싶다면, '윗님'들이나 '전문가'들이 대신 해줄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 한명한명이 -똑똑한 국민- 그리고 전문가가 되어서 최대한 많은 증거를 모아놓고, 때가 되었을 때 철저하게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한다.

 역사, 인문, 철학 같은 중요한 사항이 대화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유럽에선 카페 주인장도 철학을 논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연예인과 '술'을 논한다.













 어쨌든 우연히 도서관에서 너무나 훌륭한 책과 마주쳐서 소개하지 않고는 못 버틸 기분이 들었다.


 책의 제목은 바로 [서울대 이태진 교수의,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다.


 제목 그대로다.


 특강 형식으로, 일본의 최고 엘리트에 해당하는 동경대생들에게 그들의,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들려준 강의를 녹음하고 그것을 그대로 활자로 옮긴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렇기 때문에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일반에게 잘 안 알려진 '가쓰라-테프트 밀약'같은 용어풀이는 건너뛰어 있고, 내용이 알찬만큼 어느정도의 '지적수준'이 되는 사람은 정말 흥미롭게 읽을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귀중한 역사의 내용이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중고등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을 정도로 3권 분량 쯤으로 풀이된 버전이 나온다면 교과과정에 넣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싶을 정도다-_-




 그만큼 놀라운 책이었다.


 그럼 이 책에 담겨있는 중요한 부분들을 맛보기식으로만 나열해 보겠다. 린지는 지금 철저히 책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린지의 부실한 역사지식을 가지고 이 책을 풀이할 바에 [읽으시오.]하고 강조하는 것이 낫겠다.









1. 고종은 시대를 잘못 만난 역사의 훌륭한 지도자였다.



 누구나 [국사]라는 과목을 기억할 것이다. 고리타분하고, 재미없고, 맨날 찌질하게 당하고 별볼일 없는.

 
그중에서 가장 별볼일 없음이 강조되어 보인듯한 왕이 바로 [고종]이다. 국사 교과서를 읽으면 도대체 이 인간은 나라 말아먹을 때까지 일본의 발밑에서 뭘했나 싶을 정도로 무능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렇다. 한국의 교과서는 자국의 왕이었던 사람을 무능의 극치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고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어린 나이에 즉위에 대원군이 대신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 조선은 폐쇄적인 국가였지만, 고종이 힘을 쥐고는 상황이 달라졌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세련되게' 외국의 신문물을 받아들일 줄 알며,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호기심을 곤두세우고, '어떻게하면 조선에 도움이 될까'하며 궁리했던 것 같다. 일부에 알려진 것과 같이 커피도 즐기고 외국 선교사들과도 교류가 활발했다. 선교사를 박해하고 보는 대개의 나라의 수장들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고종은 국제사회에서 약소국에 속하는 조선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을 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에게 신뢰를 얻는 것을 바탕으로 세계사회에서 조선의 기반을 잡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신뢰를 얻는 방법은 당연히 조약을 맺고 그것을 성실히 이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렇게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내용의 조약이 체결이 되겠지만, 철저히 지켜나가면 믿음이 생기고 교류도 활발해지며 그 과정중에 국가도 부강해져 어깨를 나란히 하게되는- 그러한 방식이다.

 그 외에도 한국의 근대화의 기반이 대부분 고종의 손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2. 고종이 근대화에 기여를 했다고? 일제시대 때 일어난 것이 아니고?



 우선 이 책에 나와있는 (사실상) 고종-혹은 한국정부의 업적을 나열해보겠다.


 * 무기 구입

 * 신식화페제도 준비
   (불량화폐 이야기가 있지만 , 이것은 일본이 전쟁자금 빼돌리려고 조작한 것.)
 
 * 건청궁 점등으로 전기시설 보급에 앞장
 
 * 신식 금융제도 도입
(은행같은)

 * 독립협회 만들도록 종용

 * 대한천일은행의 발족& 중앙은행 설립 준비

 * 광산개발
(외국회사는 순이익금의 25%를 한국정부에 내야함. 일본통감부가 세워지면서 통감부가 5%로 낮춤)

 * 중앙은행의 건물은 통감부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한국정부가 이미 완성해놓은 설계를 약간 수정만 한 것.

 * 신분차별 없는 신식 교육 보급

 * 현대의'국토개발계획' 준비-착수
(일제로 완성 못함)

 * 철도공사 (서북철도, 서울-의주는 대한제국의 힘으로 신설하러.)

 * 도시개조사업(미국식 정방형 도시 모델.)

 * 방사상 도로

 *
상하수도 시설

  etc...



 이 모든것이 완성되어있었거나, 준비단계 최소한 계획이 다 되어 있는 상태에서 일본이 개입해 -마치 일본이 한 것-인 양 했던 것이다. 식민사관으로 우리도 , 그렇게 배웠다. 놀라운 것은, 당시 일본은 이런건 커녕, 밖에 전쟁 치르고 다니느라 국내 상황 신경거의 못쓰는 '알거지'였다.



 이렇게 멋진 나라가 어쩌다..











3. 일본의 문서위조




 책을 읽으면서 제일 어처구니가 없어 치가 떨릴 지경인 부분이었다.



* 우선,
 
 일본은 아주 당당히도 순종황제의 서명을 날조했다.


 글씨체가 같든 말든 , 그저 서명인 '척'자 하나로 만사형통하게 해먹었다. 더 분노할 만한 사실은, 실제 순종의 서명이다. 유학으로 , 그리고 대원군의 재능을 물려받아 서화에 능했던 순종의 실제 서체를 보면 어린아이의 것처럼 서툴러보인다. 다름 아닌, 일본측에서 수랏간을 통해 커피에 타넣은 다량의 아편 때문이라는 사실... 고종과 순종 두 부자를 같이 보내려했지만, 다행히 고종은 낌새가 이상해 뱉었고 순종은 삼킨것이, 결과적으로 손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지경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 일본은 침략이 아닌 , '팩스 위조'로 대한제국에 대한 '식민화'를 이루었다.



 당시 조선은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청이랑 러시아랑 쌈박질하느라 '미안 너네 앞마당 좀 지나가게 해줘, 뒷동네 애들이랑 한 판 떠야하거든'했던 일본이, 최대의 무력을 갖춘 군대를 가지고 그대로 한반도, 그것도 서울 + 감히 왕이 있는 경복궁까지 점령해버렸다. 떼쓰길래 하는 수 없이 대문 열어줬더니 간다는 뒷동네는 안가고 안방에 처들어와 껌씹고 앉아 있는 꼴이었다.

 원래 [문]기반이라 [무]가 약했던 탓도 있지만, 전쟁할 생각도 없는 상태에서 손을 쓸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인데, 그 상태에서 일본은 대륙으로 뻗어나갈 기점으로 삼은 조선을 삼킬려고 온갖 불법적인 방법을 행한다.






* 여기서 가장 웃기는 것은,
 일본이란 나라 자체가 부강해서 침략해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은 별볼일 없는데 오히려 더 발전하는 '범생이'집에 처들어와 칼들고 혐박하는 꼴이었다. 그러니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고, 사실상 한국의 국력이 약해서 침략을 당해야만 했던 것이 아니다.




>> 가장 어처구니없었던 '팩스'건으로 돌아오면,


 그래서 위와 같은 상황으로 협박을 하고 있으니,
 
 한국의 입장에서는 일단 '오냐오냐'해둬야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유명한 [한일협약]은 공식 문서가 아니였다.
 일본은 제목도 없고 형식도 안 갖춘채 항목 세개만 덜렁 적어온 걸 각서라고 들이 밀었다. 그중 3항은 한국의 모든 외교사항은 도쿄에 있는 일본정부와 먼저 협의해야한다는 내용으로 사실상 식민지 선언이었다. 한국측에서는 말도안되는 상황에 난리도 아니였지만, 목에 칼은 들어왔고 별의미없는 임시 종이조각에 불구한 각서이길래 일단 '오냐'해줬다.


 그런데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한다. 일본은 이걸 들고가서 그대로 영어로 번역을 한다.

  그것도, '협약'이라고 나열해둔 억지 내용을 그대로 옮긴 다음에, 그 위에 -
본 문서에 없던 제목을 단다.


 >> [Agreement][Convention]이란 '듣도보도 못한' 문자가 등장하는데, 이건, 공식 외교조약에만 사용되는 것이다. 그래놓고 이걸 다른 나라들에 뿌린다.



 그렇게 한국은 뒷통수에서 '식민지'로 인정이 되어버린다.



 그것을 바탕으로 [일본이 한국을 맘대로 해도 상관않는다]-하는 가쓰라-테프트 밀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인다고 나와있다.



 더 웃기는 건, 나중에 외교문제로 한국이 미국정부자 접촉을 했는데 '너네 일본 보호국으로 되어 있던데 걔네한테 상의해야지'식으로 나와 알게 된 것이다. 한국정부측에서는 말도안되는 강제조약이었다고 항의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그러니까 '식민지'가 되었지..) 이걸 보면 일본 뿐 아니라 미국도 알면서 고의적으로 그랬다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놀라운 사실들을, 한국의 교과서는 가르쳐주고 있지 않다.




 일부 전문가들이나 알고 있는 사항은 역사로서의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발휘하기 힘들다-라고 이야기 해야하지만, '국민들의 앎'과 역사, 그리고 정체성의 관계를 따지면, 현재 한국에서는 대한제국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에게 묻고 싶습니다.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
 우리에 대해 얼마나 아세요?
 조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그리고,

 [역사]에 대해 ,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역사라는 것은 사람과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기르는 뿌리입니다. 이 기반이 약할 때, 인간은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서도 가볍게 여기게 되고, 애국심도 자아감도, 자신을 소중이 여길 수 있는 능력까지도 손상됩니다.



 저는 솔직히, 교과서에 나오는 [내 나라]의 역사를 보며, 자긍심이 점점 빼앗겼습니다. '역사'를 알 수록, 한국이, 그리고 그의 연장선에 있는 -나 자신-이 초라해보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역사에 대한 관심을 잃어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 의식이 희미해졌을 때,

 늘 끓어오르는 독도도, 간도도, 위안부 문제도, 대책없이 빠져나간 '노다지'들도, 모두.
 우리의 손에서 벗어나게 되고 맙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도, 슬픕니다.

 땅따먹기에 져서가 아니라, 한국사람들이, 그리고 한국의 아이들이 자부심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한달에 딱 하루만이라도, 근처 도서관에 놀러가서 

-한국사-라고 쓰여있는 곳에 가보세요. 가장 예뻐보이는 책이라도 골라, 가장 재미있을 것 같은 부분만이라도 읽어보세요. 그것이 조금씩 조금씩 쌓이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늘어가면,





 한국의 역사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겁니다.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 10점
이태진 지음/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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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사합니다 2011.04.08 10:51 address edit & delete reply

    와 포스팅 잘보고 갑니다.
    국사를 좋아라 하는 저로써는 국사교육을 등한시하는 교육정책이 참 맘에 들지 않는다고 봅니다. 게다가 학생들이 읽기 너무 딱딱한 국사교과서는 참.. 문제가 많죠. 저 역시 근현대사 부분은 소홀히 했었는데 너무 우리나라 역사를 비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어서 읽으면 읽을수록 괜한 자괴감에 빠져서 소홀히 했었네요.
    기회가 되면 당장 책을 사서 읽고 다시 국사를 공부하겠습니다. 포스팅 감사합니다!

    • Lynzi Cericole 2011.04.08 12:52 신고 address edit & delete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 계기로 좋은 국사책을 더 찾고 싶어지는 마음과, 국사, 특히나 근대사에 관심이 가더라구요~
      꼭 한번 읽어보세요ㅎㅎ

  2. 다시마 2011.04.08 13:30 address edit & delete reply

    잘 보고 갑니다.

  3. IBK_bank 2011.04.08 14:25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어떻게하면 이 책을 일본의 학생들에게 모두 들려줄까요...
    요즘 독도 소식만 접하면 ... ㅠㅠ
    일본 지진으로 우리국민들이 보여준 격려에 대한 답을 이렇게..
    쓸쓸한 마음이...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

    • Lynzi Cericole 2011.04.08 15:23 신고 address edit & delete

      동경대서 강의한 것이라 그런가, 뒷면에 보니까 일본어판도 있더라구요. 출간이 되었을텐데... 자국에도 별 관심이 없는 일본 젊은이들이 많이 읽지는 않았을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4. Ivan Anakia 2011.04.08 21:02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저도 작년에 이책 나왔을때 바로 사서 읽어봤는데 많이 놀랬습니다.
    고종에 대한 일본의 역사왜곡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고종이 실제로 저정도까지 의식있는 지도자였는지는 몰랐습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전등 등을 도입하고 하는 부분은 정말 놀라운동시에
    일본에 대한 분노가 더욱 치밀더군요 ;

    • Lynzi Cericole 2011.04.08 21:11 신고 address edit & delete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죄송한 마음까지-

      우리가 너무 모른 대한제국의 황실 이야기들을 하나씩 알아갈 수록 일본에 대한 분노는 물론이고, 무지에 대한 분노도 일어나더군요...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5. Ivan Anakia 2011.04.08 21:11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실제로 일본이 식민지화에 더 속도를 가한것도
    고종의 저런 주도면밀한 모습들에 긴장해서였다고하고 그래서
    커피에 독타 죽이죠...

    그런데 전 일제보다 우리나라 발전에 더 타격이었던 시대는 이승만 박정희 시대라고봅니다...
    몽양 여운형이 초대 대통령만 순조롭게 되었다면 지금의 한국은 진작 일본을
    내려다보고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해방후 일본보다 더 빠르게 발전할수있는 기회를 저 두놈이 다 날려먹었죠...
    여운형 지도자님이 너무 그립네요..
    전세계에 그런 매력적이고 지략을 갖춘 지도자도 찾기 힘든데...
    (고 김대중 대통령님이 가장 존경하신 분이죠)

    • Lynzi Cericole 2011.04.09 07:45 신고 address edit & delete

      네, 그부분이 제일 견딜 수 없었달까. 진짜 동네 깡패한테 당하는 꼴이었으니...

      여운형이라... 저 또한 역사에 무지한 사람으로서 처음 듣는 이름이네요ㅜㅜ 이전에 교과서가 거의 전부라. 이승만과 박정희는 정말 한숨나오는 이름들이네요.
      전 이승만이 의민태자의 귀국을 방해하느라 온갖짓을 한건 용서가 안됐어요...

      그리고 박정희의 뒷얘기들... 어쩌다 고등학교 때 정치나 역사 뒷세계에 빠싹한 선생님들이 여럿걸려서 많이 들었지요...본인 독재하려 한국에서 만든 핵무기도 미국에게 더는 안만드는 조건으로 팔아넘기고..그런

      그보다, 문화와 교양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저로선 한국인의 정신을 피폐하게하고 장기간의 안목에 해가되는 발전을 했다는데서 마음에 안드는 지도자랄까요ㅎ..

      좋은정보 감사합니다:D

  6.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04.08 21:33 address edit & delete reply

    일본국민도 그러하지만
    우리도 우리의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까요?
    저도 한국사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으로써
    한국사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 Lynzi Cericole 2011.04.09 07:48 신고 address edit & delete

      한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니, 기쁩니다^^

      물론, 이런 부분을 재조명함과 동시에, 일본과 마찬가지로 교과서에 쏙빠진 배트남전에 관련된 부분도 들어가고 알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쪽은 아직 모르는터라 책이라도 한권 읽어보려구요- 방문 감사합니다~

  7.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04.08 21:54 address edit & delete reply

    ㅋㅋㅋ 잘 보고 갑니다.. 오랜만에 이태진교수님의 책이네요.. 나온지도 꽤되었지만..ㅎㅎ 읽기도 쉽게 되어 있어요.. ㅎㅎ 강의록을 묶어놓은 것이라서..읽기도 무지하게 쉽고.. 내용도 알차고..ㅎㅎ 사려다가 기회가 없어서 못샀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봐야겠네요..ㅎㅎ 지금은... 수업발표준비로..ㅎㅎ 미루고...ㅎㅎ

    • Lynzi Cericole 2011.04.09 07:51 신고 address edit & delete

      ㅋㅋ도서관에는 신착도서로 되어있더라구요. 제 손에 들어온것도 최근이라ㅋㅋㅋ

      강의라 어렵지는 않는데, 배경지식이 어느정도 갖춰진 사람들이 읽기 좋게 되어 있는것 같더라구요. 그러니까, 제가 제일 읽었으면하는 일반적인 중고생들에게 어필하기엔 조금 더 풀이를 해야하지않을까-싶은. 소설책도 잘 안읽는데 후.. 한숨이 나오네요.

      ㅎㅎ 발표 잘하세요!

  8. stylegraph 2011.04.09 01:39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아.. 잘 보고 갑니다.. 꼭 읽어야할 필독서 같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 역사도 교과서 측면부터 바뀌어야할 부분이 많은것 같습니다..아직.. 갈길이 머네요..

    • Lynzi Cericole 2011.04.09 07:53 신고 address edit & delete

      너무 표면적인 성장 위주의 정책이 정작 중요한 부분을 부실하게 한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교과서도 중요하지만,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알아가는 마음을 찾는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인것 같네요.
      큰 그림을 보며 조금씩이라도 나아갔으면 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9. 바닐라로맨스 2011.04.09 15:0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오늘따라 일본에 관련된 포스팅들이 유독 눈에 띄네요.
    그간 역사에 무감각하며 살아왔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 Lynzi Cericole 2011.04.09 15:23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이렇게라도 한두명씩 늘어간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어요ㅎㅎ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10. Ivan Anakia 2011.04.09 15:29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여운형에 대해서는 꼭 공부해두세요
    해방전후로 조선 모든 민족들이 가장 따른 최고의 지도자였고
    후에 미국도 여운형쪽으로 마음이 기울자
    이승만 세력에 의해서 암살당합니다...
    사실 저분이 우리 초대 대통령이 되실 분이었죠.
    일제시대에 일본에 가서 일왕앞에서 큰소리 떵떵거리던 대단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김원봉에 대해서도요 ㅎ
    이분은 일본이 안중근보다 더 두려워한 분이죠.
    그런데 아쉽게도 이런 한국 남북 모두에서 존경받던 분들은
    모두 남북에 의해서 역사에서 사라지고 제대로 다뤄지지못하고있죠...

    • Lynzi Cericole 2011.04.09 15:34 신고 address edit & delete

      네! 너무 좋은 뎃글들 감사합니다(_ _)

      혹시 들려주시는 다른 분들도 참고하셨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중요한 인물들이 이제야 처음들어보는걸 보면, 국사교과서의 존립에 의심이 갑니다...

  11. 잊으면사람아니다 2011.04.10 00:47 address edit & delete reply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어릴적부터 부모님께서 그리고 먼저 공부한 동기가 가르쳐주면서
    알고 자랐습니다.
    기쁘신가요?
    한사람이라도 더 제대로 알고 있어서요?
    이런 글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겠지만,
    어릴적부터 역사관을 세워주지 않는 부모에게 자란 아이들이란
    한계가 있게 마련이지요.
    먹고 사는 문제 앞에 역사가 얼마나 토론하기 어려운 문제인지요.
    그러나 잊으면 안되는 문제를 잊으면
    다시 힘든 상황은 그대로 돌아오게 마련이니
    언제나 깨어있어야겠지요.,

    • Lynzi Cericole 2011.04.10 13:5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아... 말씀이 좀 날카로우시네요. 저도 이런 문제에 대해선 상당히 시니컬한 쪽이지만, 포스팅에 독하게 말을 하면 반감이 느껴질 수도 있어 유하게 표현한겁니다.

      전 어릴적 가치관이 서양식으로 자리잡아서, 한국인의 일상 대화나 생활 방식 하나하나가 한심할 때가 있습니다. '철학'이라는 걸 '변태'들이나 하는 '학문'으로 여기는 풍조도, 상류층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 빼곤 거의 교양이라는 것에 무지한 부분도요.

      사실 먹고 사는 문제 앞에서 역사가 더욱 논해져야 하죠.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닌 역사라면요. 어떻게 위기를 넘겨야하는지에 관한 답도 상당히 제시해주니까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12. 사자 2011.06.22 20:00 address edit & delete reply

    새삼 많이 반성합니다..고등학교 때 근현대사 시간이 제일 졸렸었는데,, 배우는 사람도 대충대충,, 가르치는 사람도 대충대충,, 제가 만일 교육부 장관이 된다면 각 학교 근현대사 선생님을 전국에서 제일 잘생긴씨들로 철저히 교육시켜 배치하겠어욧!

    • Lynzi Cericole 2011.06.22 21:22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아하하 교육감 후보세요ㅎㅎㅎㅎㅎ 저도 근현대사가 너무 끔찍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괜찮은 역사였다니, 뒤늦게나마 알게된게 다행이면서도 아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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