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5.22 대한제국의 의민태자(영친왕), 역사에 빼앗긴 인생과, 그의 정체성 I(8)
  2. 2011.03.31 혜원 신윤복, 「미인도」내멋대로 감상하기 [상편](4)

대한제국의 의민태자(영친왕), 역사에 빼앗긴 인생과, 그의 정체성 I






 몇달전에 이은, 또는 영친왕으로 익숙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의민태자에 대해 약간 알게 되었다. 오늘, 또 우연한 계기로, 지나가다 틀게된 [역사 스페셜]의 내용이 바로 그에 관한 것이었다.



 익숙하든 안하든, 린지는 이후부터는 그의 올바른 호칭인 [의민태자]로 칭할 것이다.



 또한,

 그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방송에서도 대놓고 끄집어내는 [경계인]이라는 말 대신,
TCK로서의 관점으로 그에 대해 부족한 글을 쓰고자 한다.

















 원래 의민태자에 대한 포스팅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많이 일러졌다.




 그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의민태자는 조선의 마지막 세자이고, 고종황제와 순헌황귀비 엄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덧붙이자면 고종이 가장 사랑하던 아들이었다고 한다.




 영친왕으로 더 널리 알려진 의민태자는 흔히, 조선왕조의 세자이면서 동시에 일본 황실의 일원이었던 신분의 모호함이 낳은 '불편한' 인물로 자리 잡고있다. 지금의 우리는 정서적으로도 납득을 하고 있지만, 그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인생을 살았다. 안타깝게도, 당시의 고조된 조선의 민심속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의민태자가 일본으로 '유학'이라 칭해진 볼모 생활을 하게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다른 포스팅에서 밝혔지만, (한국인이, 한국인으로, 한국에 대해 알아야할 이야기_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고종황제는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을 가졌던(오늘날의 역사는 '자질'이라는 단어로 한정하게 만든다.) 강적이었기 때문에 일본측에서 강제퇴위를 진행했다.


 이 때의 비화를 잠시 이야기하자면, 고종황제의 퇴위식이자 순종황제의 즉위식에, 정작 두 사람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외신들에 의해 자국 1면에 그림을 동반한 기사도 났는데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당시 물러날 이유가 없는 고종은 물론이고, 순종 또한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하며 함께 궁에 있었다고 한다.
 주인공 당사자들이 없는데 식이 진행되겠느냐- 뭐. 당시 일제였다. 무엇인들 못하랴. 고종과 순종의 자리는 [연기자]들로 체워졌고, '퇴위식'은 공식적으로 무사히 마쳤다.








 이에 대해, 고종은 교과서에도 알려져있는 [헤이그 밀사] 사건을 일으켰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이로 인해 일본의 압력만 높아졌다. 이 상황에서, 어차피 불임이었던 순종에게 후사가 없었으니(뛰어난 서예가였던 그의 흐트러진 글씨로 순종황제는 당시 일본측에서 수랏간을 통해 매일 아침 마시던 커피에 타넣은 대량의 아편 사건으로 일상 생활조차 힘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가장 사랑했던 아들, 이은을 [황태자]로 책봉했다. 순종과의 관계를 따지자면 [황태제]란 표현이 맞는데, 고종황제의 아들인 이은에게 굳이 [황태자]란 이름을 준 것은,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황제는 고종 자신이라는 의미를 담은 정치적 승부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의 선택이 썩 현명했다고 볼 수는 없다. 황제로 앉아 있는 순종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고, 급박한 정치적인 상황속에서 31세의 든든한 [이강]에게 태제든 태자이든 , 다음을 책임질 타이틀을 줬어야했는데, 개인적인 총애로 이은을 선택했고, 이것은 사랑하지 않으니만 못했을 저주가 되어버렸다.





 멀쩡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남의 나라 군주를 두고서 순종의 사인을 위조해가며 조선을 '통치'하고, 외교문서도 조작해 해외에 뿌린 당시 일본과 조선총독부의 창의적인 발상으로 인해, 대한제국은 황태자를 꼼짝없이 빼앗기고 말았다.




 세자교육에 끔찍한 조선왕실의 전통을 빌미 삼아 ['낙후 된' 조선의 교육이 아닌, 선진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의 최고 교육을 시켜주겠다.]는 명목하에 , 반박 할 여지도 없이, 의민태자는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게 되고 말았다.










 당시 대부를 맡아 그를 데려간 사람은 다름 아닌, 이토 히로부미였다.



 일본의 목적은, 어린나이에 대한제국의 후계자를 데려가 '일본물'을 들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한 친밀감을 최대화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부였는지, 그를 '보살핀' 이토 히로부미는 극진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에서 우러난 행실이었다고 믿기는 힘들다. 정복당한 부족 족장의 머리를 들고 행진을 하듯, 기모노를 입힌 의민태자를 옆에 두고 찍은 사진이 대외홍보용으로 뿌려졌다.




 그렇게 해서, 이은은 세자가 된지 일년도 채 되기 전에 1907년,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11살이었고, 그의 곁에는 동궁대부였던 고의경, 시종무관 조동윤, 그리고 끼어서 가게된 외사촌 엄주명만이 있었다.



 일본측에서는 유학이라 우겼지만, 조선황실의 가족들이 아무리 간청을 해도 방학 때 조차 귀국을 할 수 없었던 의민태자는 명실상부한 '볼모'의 처지였다.











 그의 어머니이신 엄씨가 1911년 병사했을 때도, 장례를 위해서 어렵게 4년만에 귀국을 한 그는 '전염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다가가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 부분은 정서를 이해하면 '그럴 수도 있지'할 문제가 아니다. 오래된 무덤조차 실제 살아있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해 찾아가고 '대화'까지 하는 한국의 정서상, 죽은 사람이라도 '시체'가 아니다. 그 사람 자체로 인식을 했을 것이다. 하물며, 4년만에- 자식이 보고싶어 홧병으로 돌아가셨을 어머니를 앞에 두고 다가가지도 못하게 했다니. 심성을 보았을 때 효심이 지극했을 의민태자에게는 어머니가 더 이상 '움직이지'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가혹했을 것이다.






 그로부터 7년 뒤, 엄연히 태자였던 의민은, 그를 너무도 아꼈던 아버지 고종의 임종마저 지키지 못하고 떠나보내야했다.







 의민태자의 외로움은 단순 [경계인]이란 단어로 그를 표현한다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더 많은 시간과 실제적인 인생을 보낸 곳이 일본인데, 겨우 어린아이로 떠났던 조선에 대해 사무치게 그리워했을까?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제 린지는 다시 그를 TCK라는 울타리 속의 사람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경계]에 서있는 사람이 아닌, 문화와 문화 사이를 오가며, 그 사이에서 벌어진 새로운 문화에 발을 딛고 있던 사람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하는 것은, TCK들이 '국경'에 서서 이쪽과 저쪽에 발을 자유자재로 걸치는 '박쥐'가 아니라는 점이다. 100%옳은 이미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TCK들이 고국을 떠난적이 없는 비TCK들이 이해하기 힘든 강도의 애국심을 품는다. 




 린지의 TCK게시판의 부제가 [허공]이니 만큼, 그곳은 보이지 않는 땅이고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허공이라는 것은, 그와 동시에 모든 곳에 펼쳐져 있다.





 이런 표현이, 의민태자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는 '혼자'가 아니다.










 전편으로 짧게 끊어 마치면서_



 이방자 여사(정식명칭: 의민태자비)의 <세월이여 왕조여> 내용중에,
의민태자의 책상에 놓인 이상한 돌조각에 대해 묻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그 내용을 옮겨본다.



전하께서는 일본에 와 너무 그리운 나머지, 고종황제께 10살 때부터 일본에 가기 위한 준비기간 동안 있던 낙선재 뜰의 조약돌 몇 개를 보내달라는 편지를 하셨다고 한다. 맨질맨질 해져버릴 정도로 닳아버린 조약돌은 향수와 외로움을 달래주던 벗이자 장난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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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8 Trackback 0
  1. 도플파란 2011.05.13 06:44 address edit & delete reply

    의민태자는 영친왕 이은이 죽은 뒤에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정한 시호입니다..오랜만에 영친왕의 글을 읽어보네요... 영친왕도 그렇고, 덕혜옹주도 그렇고... 2005년에 작고한 영친왕의 아들인 이구씨도 그렇고... 모두들 힘든 삶을 살았고... 기구한 삶을 살다가 삶을 마친 인물이지요.. 이젠.. 기억의 저편으로 살아졌고... 점점.. 잊혀지고 있지만... 이젠.. 홍유릉 구역에서 평안히 지내고 있을지...홍유릉에 가면.. 영원이란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영친왕이은과 이방자 여사의 묘입니다. 그 뒤엔 덕혜옹주와 의친왕 그리고... 그 뒤에는 이구씨의 묘가 있습니다..

    • Lynzi Cericole 2011.05.13 07:1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오랜만이네요ㅎ

      원래 왕명이나 태자 이름은 나중에 지어지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영친왕은 일본쪽에서 한국의 국격을 낮추기 위해 만든 명칭이라더군요. 대한제국은 엄연히 황제의 나라라고 우리가 공표를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정한 의민태자라는 호칭이 맞다고 책에 나와있었네요ㅎ 그렇게 부르고 싶게 되었습니다.

      후... 귀여운 막내딸 같은 느낌히 선한 덕혜옹주의 사진들을 보며 가슴이 아픕니다.

      의민태자에 관한 글을 읽고, 안 그래도 "한번 '찾아뵙'자"라는 기분이 절로 들어요. 스스로에게 잠들어 있던 이런 '한국적인 의식'에도 적잖게 놀랐더라지요. 이미 떠나간 사람인데,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은 어리석은 것일까요ㅎ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 이바구™ - 2011.05.13 14:37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어제 역사스페샬에서 영친왕의 불행했던 과거를 봤습니다.
    그의 불행했던 위치에 가슴이 아프더군요.

    • Lynzi Cericole 2011.05.13 15:5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불행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대표로' 받아서 더 안타까운 것 같아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3. 2011.05.13 15:18 address edit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Lynzi Cericole 2011.05.13 15:54 신고 address edit & delete

      그렇죠...

      어처구니없게 당한 부분에 대해서는 조선왕조만한 경우도 드문것 같아요. 물론, 세도정치로 진작에 무너졌을 왕조였지만, 과거의 성군들에 대한 존경으로 백성들이 유지시켰죠.

      차라리 백성들이 일으킨 일이라면 '순리'라고 생각 할텐데...

      반복되지 않도록 과거를 잘 알아보고 노력을 해야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4. 여울해달 2011.05.13 17:20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어제 이걸 보기전까지는 역사스페셜이 종방된 줄 알았어요.^.^
    여하튼 어제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돌더군요.
    누구에게도 자신의 아픔을 털어 놓을 수 없는 삶을 살았던 망국의 황태자 이야기...
    일본왕족에 준하는 대접을 받으며 몸은 편했을지 몰라도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졌을거라 생각합니다.
    당시 조선백성들도 그렇지만 다른 누구보다 조선의 처지와 왕실의 무능함에 피눈물을 흘렸던 것은 아마도 영친왕 자신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 Lynzi Cericole 2011.05.13 23:57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성품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을거에요...

      다음 포스팅에 이어하려했지만, 일본에서 자리 잡으면서는 사비로 자신의 나라를 위했죠. 전부 소용이 없게되었지만요...
      그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이 너무 끔찍해서 울분을 토하게하는 인물인 것 같아요.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는 것 또한 씁쓸해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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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 「미인도」내멋대로 감상하기 [상편]







 혜원의 미인도. 워낙 오래전에 마주친 그림이라, 첫 감상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만해도 내 눈은 루브르의 벽을 장식할 법한 서양화에만 익숙해져 있었는데, 「미인도」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모습에 실망했던 건 기억이 난다.
 


 사실 그렇다. 나 같은 경우에는 한국과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었는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 현실은 실망스러웠다. 학교에서 배우는 한국사는 가장 끔찍하다 배웠던 '영국사'보다도 재미없고 찌질했다. 침입이나 당하고 망하기나 하고, 그나마 삼국시대 때 좀 괜찮았다고 얘기해주더니 그건 금방 끝나고, 중국한테 사대할줄 밖에 모르는 짜증나는 이야기들만 가득 나온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관절 누가! '그딴 역사'가 있는 나라를 사랑하겠나. 학교에서 배운 한국이란 나라는 그랬다.



 예능 교과서의 배치도 마찬가지였다. 이 부분은 다음에 언젠가 자세히 열폭해 보도록 하고,




 무튼, 그런 이유로. 설명도 되지않고, 웅장하고 역동적인 서양의 미술품에 비해 너무도 초라한 한국화를 보며 자괴감 비슷한 것도 느꼈다. 문화란 그 나라의 기상과 자부심, 그리고 수준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라 이런 빈약한 '호박'을 미인이라 칭해야했던 선조들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어떠한 계기로 신윤복에 흠뻑 빠져들었고, 그러부터 몇년이 지나서야 조금씩, 옛그림들을 보는 나름의 눈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처음 뜯어본 그림이,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다.












 우리의 옛그림을 보는 방식은 오른쪽 윗 귀퉁이부터 ↙이렇게 내려가는 형식이다.




 오주석님의 책에 의하면 그렇다. 맞다. 원래 동아시아의 글씨가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여지는 것이라, 그림을 즐기는 양반들도 시선이 그렇게 움직였을 것이다. 그림은, 당연히 그 시선에 맞게 그려지고,















 우선 찬찬히 슬로우 모션으로 살펴보면, 풍성한 트레머리가 보이고, 초롬한 얼굴, 가느다란 목, 여린 어깨가 눈에 들어온다. 



 여인이다.


 여인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씩 용기를 내어 나아가보면, 작달마한 손이 옷고름과 노리개에 엉켜있고, 드러날듯 말듯한 여린가슴과 잘록한 허리에 눈을 둘곳을 잃는다. 그리고 드디어 풍성한 치마가 왠지 손을 내밀고 싶게 한다. 들썩이며 쪽빛 치마 아래로 삐져나온 앙증맞은 발이 보인다.




 다시 눈길이 간다. 아름다운 여인이다.


 어느새 관객의 눈은 장난스러운 손에 고정되어있다. 그저 노리개를 가지고 노는 것 뿐인가, 아니면, 아슬하게 걸쳐있는 저 옷고름을 풀어내릴 것인가. 긴장을 하다 '아차' 정신차려야지, 하고 시선을 거두어들이려는데, 저고리 아래로 드리워진 연지빛 옷고름이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요즘이야 워낙 하의실종자들과 앙트와네트 상의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이런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겠지만, 당시의 사대부들의 마음을 생각해봐라. 여인의 품에서 흘러나온 붉을 끄나풀은 충분히 자극적이었을 것이다.

 


 좀 더주의를 기울여보면, 여인의 어깨가 불균형하다. 이건 비율이 안 맞는게 아니라, 오른쪽을 살짝 뒤로 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보는이의 상상을 유도한다. 어찌보면 앙탈을 부리는 걸 수도 있고, 수줍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는, 언제든 여인이 그대로 돌아서 화면밖으로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안타까움까지 느끼게한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없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상태로 보이기도 한다. 기억하자. 이 그림을 보는 것은 사내들이다.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여인이라니, 얼마나 두렵고 애가 타는가.





 신윤복, 이 형님은 요즘 세상에 태어났었다면 여성 패션디자이너가 되든지, 천채 패션 화보작가가 되었든지, 아무튼 , 아름다운 여인네들이 득실대는 곳의 유명인사가 되었을 것이다. 너무 잘 알려진 것처럼, 그의 그림은 당대의 미의 정석을 화폭에 담아주었다. 복식학자들에겐 참 고마운 인물일 것이다.

 완벽한 상빈하후의 실루엣과, 그 균형을 완성하는 큰 트레머리는 정말 매력적이다. 뭐, 다른 아저씨들이 그린 여인네의 치맛자락도 가끔 보지만, 이 형님처럼 맛깔나고 아름답게 표현한 건 보지 못했다. 한껏 부풀어 오른 치맛폭과 맨질맨질하고 새까만 색이 탐스러운 트레머리는, 볼 수록 감탄사를 자아낸다.




  
 의상으로 넘어가버린 지금, 현대인으로선 바로 알아채기 힘든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잘 생각해보아라. 조선은 상공업이 발달되지 않은 나라였다. 마님의 가체 하나가 집채 정도의 가격을 하던 시절이다. 신윤복이란 이름을 들어보았다면 이미 그가 기생들을 그렸다는 것을 알고 있을테고, 그럼 이 기생이, 가발도 사고, 노리개도 사고... 어쨌든 보기좋게 치장할 정도의 재력은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도가 되려면? 그러니까, 천민 출신의 여인이 이 정도의 재력을 갖출려면 답은 하나뿐이다. 상당히 유명한 기녀였을 것이고 재주든 아름다움이든 받혀주니까 양반들이 돈다발을 던져줬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리 생겼다 할지라도 당대에는 미인이 맞았을 것이다. 린지도 저 시절에 태어났으면 한 가닥했을련지도 모르겠다. 아쉬운대로 서방세계 투어나 갈까-





 까칠한 고발쟁이었던 윤복님은, 어쩌면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시 양반들의 꼬라지를 쌍심지 켜놓고 지켜보던 이 화가는 여기서도 독설을 뿜고 있을 수도 있다.

 천출의 여인이, 노리개도 달고, 탐스럽게 머리까지 올렸으니, 양반들이 기방 곳곳에 전두를 쥐어주고 다니는 세상이다. 라고 말을 하는 걸지도. 뭐 , 그렇다기에는 미인도에 나오는 여인이 좀 수수하긴 하다. 하지만, 이미 한 여인을 주인공으로한 저런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충분히 위화감이 넘친다. 풍속도를 보여주던 다른 그림보다 더한 음모가 느껴진다.
 '바람의 화원'이라는 소설과 드라마의 모티브가 되었던 '윤복이형 남장여자설'이 나올법하게, 이 천재는, 여자를 하나의 대상이자, [인격체]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것도, 아무리 대가댁 마님을 그리는데 사회적 제약이 있었다 쳐도, 다른 누구도 아닌 기생을 [사람]이자 (남성중심)'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만들어놓았다.



 어쩌면 굉장히 탁월한 선택이었다. 먹고살기 바쁜 논밭 아낙네들이나, '집안'이 되어버린 양반댁 여인들에게는 개인과 인격에 대한 의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충족시키는 것은 역시 자유로운 삶을 즐기고, 남성과 공식적으로 동석 할 수 있는 기생들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한국의 기생들은 일반 창녀들과 다르지 않았던가. 재주만 뽐내는 예기와, 시화로 양반들의 기를 죽이는 지성, 심지어 몸파는 천출 주제에 수절까지 하는 것이 우리네의 기녀들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음모론은 방바닥 아래에 숨겨두고,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면 멋드러진 트레머리 아래로 동백기름과 참빗으로 곱게 빗은 정갈한 앞머리가 보인다. 이것은 표면적인 앞모습일 뿐이다. 신윤복은 여기서 여인의 에로티즘을 극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훌륭하고 섬세한 장치를 하나 더 발견한다. 단정한 앞머리 보다는 왠지 시선이 자꾸만 다른 곳으로 가려한다. 여인의 귀 뒤로 나풀대는 잔머리, 그 보드라운 촉감은 새하얀 목덜미 위까지 보송하다.  그렇게, 시선은 다시 여인의 목에 머문다. 이 뽀얗고 여성스러운 신체부위는, 당시 노출이 허용되었던 몇 안되는 곳이다. 그 살결이 얼마나 보드라울까, 남성의 것과는 다른 저 곡선이 얼마나 눈부신가. 하나씩 살펴갈 수록 참 깨알같이 아름답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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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지의 뇌구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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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명태랑 짜오기 2011.03.29 22:38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안녕하세요. 미술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우리 조상들은 서민들의 생활모습에 관심이 많았던 같습니다. 미인도, 춘화 등 지금 보면 그 시대의 모습을 상상활 수 있으니까요

    • Lynzi Cericole 2011.03.30 06:5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이런 그림들은 비교적 최근의 것들이에요~ 실학이 들어오면서 풍속도가 자리잡을 수 있었죠:) 즐거운 하루 되세요!

  2. 빨간來福 2011.04.07 07:44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미인도 하면 전 예전에 어린이의 취미의 1/3을 나누어 갖던 우표수집이 생각납니다.저도 열렬한 stamp kid 여서 이 미인도우표가 나왔을때 줄서서 기다렸던 생각이 납니다. 그게 오래전이네요. 1978년 이야기군요. ㅎㅎ

    • Lynzi Cericole 2011.04.07 09:1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ㅋㅋ수집 취미있으셨군요- 매력적이죠... 줄서서 기다리는거라- 저한테는 생소한걸요? 와- 그때의 우표는 남아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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