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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K/ 제 3 문화 아이들/한글

지하철 안에 모인, '내게는 너무도 먼 당신'




 린지입니다:)



 요즘 포스팅 마다 같은 말로 시작 할 수 밖에 없어요.
>>>>>>>> 더워요....



작년에 뭣도 모르고 빠진 살이 다시 쪄서 그런가,
더 더운거 같습니다-ㅁ-... 취미 겸 스트레스 풀이가 식자재 갖고 노는거라, 도움 안됩니다ㅜㅜㅜㅜㅜㅜ















 공공시설인 덕분에 활활 타는 계절에도 꽤나 시원하게 유지되는 곳이 있다.


바로 발아래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지하철!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잠시간 땀을 식힐 수 있는 공간이면서(러시아워는 전쟁이지만), 어디든, 사람이 모인 장소라면 그렇듯이 한국의 지하철은 아주 재미있는 곳이다.


 어르신, 직장인, 학생, 아이, '아줌마', '아저씨' 등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각자 자신의 시간을 살고,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한 방향을 향해 부대낀다.



 교과서에 나와 있어 익히 알 수 있듯이, 한국은 서양의 10분의 1에 해당되는 시간 안에 농경사회에서 지식정보사회까지 급성장을 했다. 그 결과, 손으로 한올 한올 모내기를 하던 어르신이, 지금은 휴대전화를 들고다니며 가족의 전화를 받고, 태어나자마자 뷔페가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에서 휴대전화를 딸랑이 삼아 노는 아기가 그 노인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아직도 산골에서 나물을 캐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들을 TV로 구경하며 홈쇼핑으로 음식을 주문해 전자레인지에 던져넣는 도시인이 있다.

 어느사회나, 비슷비슷하겠지만, 한국만큼 유별난 시간을 겪은 곳도 드물것이다.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세대 사이에 까마득하게 깊은 도랑이 움푹 파여있다.


 나는 당신을 이해 할 수 없고, 당신은 나를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현주소랄까.

 



 젊은 세대의 입장을 대변해보자면, 우리는 일단 풍요의 세대에 태어났다. 도시 그늘 속에 있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음식이 도처에 널려있고, 기계가 '수고'를 덜어주는 세상을 당연시 여긴다. '민주화의 꿈'도 이미 이루어졌고,  의학의 발달로 한 세기를 살아버리는 일도 부지기수니 오래 살 걱정도 현실적이지 않다. 사람들의 주머니를 열 궁리를 하는 기업의 전략 덕에 갖고 싶은 것도 많고, 쏟아지는 정보로,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여기저기 넘쳐나는 정보조각으로, 옛사람들이라면 평생동안 알 수 없었을 '귀한 사실'들을 아무렇지 않게 손가락 움직임 몇번으로 익힌다.

 아쉬울게 없는 세대다.


 하지만 동시에, 아쉬울 줄 모르는 세대이기도 하다.  그런 현대의 젊은층 이하의 한국인들은 생존력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다. 생명을 연명할 고뇌를 할 필요가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린지는 경각심을 느낄만한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20대초반의 또래들과는 생존의식이 좀 다른 편이다. 그러니 이런 글을 쓰게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린지가 관찰한 또래들은, 좋은 쪽으로는 생존을 넘어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 차근차근 정해진 과정을 밟는 것 같은데, 문제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사실상 하루하루 단순히 '존재'하고만 있다. 급박감이 없으니 자연히 술과 소비로 연결되고, 어릴적부터 TV복종훈련을 받은 탓에 언론에서 창출해내는 '유행'을 충성스레 따라 잡스의 노예를 자청하기도 하고, 옷장도 그에 맞춰 꾸민다. 생각이란 걸 할 틈도, 필요도 없다. 외부에서는 끊임없이 자극이 들어온다. 소화를 시킬 겨를 도 없이, 모니터, 액정, 스크린 이어폰 심지어 손에 들린 WII에서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기회를 가져간다. 그렇다고 걱정할 것도 없다. 어차피 다음날 네이트기사에 '웰빙'이 무엇인지 알려주고(베플이 요약도 해주고), TV는 들을 노래와 좋아할 연예인을 선별해주고, 요즘은 소셜커머스가 뭘 살지 정해주고 싼값에 가져가라 한다.


 풍요에 감사하기에는 이미 포화 상태이고, 안정되는 사회의 특성상 열심히만 하면 성공한다는 단순한 법칙도 적용되지 않는다. 태어난 환경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직감 속에, 배는 굶지 않으니 굳이 몸부림 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그냥 대충 즐기면서 살기로 한다. 아둥바둥해서 별로 남는 건 없다. 게다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보이는 세상살이나(국회, 비리 etc) 감질나게 한 번씩 터지는 말세 징후는 젊은이의 미래에 대한 욕구를 앗아간다.




 한편, 이런 자식을 둔 부모는 속에서 불이 날 것이다.



 대개 이들의 부모세대는 새마을 노래가 한창 퍼질때 성장을 하고,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격변하는 사회속에서 "빨리빨리 코리아"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이다. 일에 잔뼈가 굵고, 배고픔이 무엇인 줄 알며 그 때문에 이를 악물고 생존을 한 세대다.


 이들의 눈에 누릴 것을 다 누릴 수 있으면서 악착같이 살지 않고, 자신들은 듣도보지 못했던 최첨단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더 갖고 싶다고 응석을 부리는 아이들을 보면 입에서 쓴맛이 돌 것이다. 뭘 해보라면 의지박약, 도대체 몸 편할 생각만 하는 것 같아 잔소리를 하면, 기성세대보다는 머리 한뼘씩은 더 자란 젊은 층은 서양에서 들어온 [나]라는 개념에 물들어, 곱게 눈깔고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대든다'.


 젊은 날 그저 살기 위해 등빠지게 일하고, 치솟는 물가에 아직도 등에 식은땀이 나게 일을 하고 있다.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면서 몇배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낙오 될테고, 뉴스에서는 아직 수명의 반절 밖에 살지 않았다고 희망차게 떠들어준다. 뼈빠지게 일한 대가는, 한국 사회를 OECD가입국이라는 명예의 전당으로 올려주었지만, 자신의 손에 쥔 것은 무엇인가.



 너무 바쁘게 사느라 문화생활은 커녕, 자아를 상실했다.

 퇴직은 눈 앞이고, 터져버릴 것 같은 도시에서 설 자리를 잃는 위기감에 사로잡힌다.



 막간의 여유가 생겨 돌아보면 유일한 희망인 자식들은 제 생활에 빠져있다. 마땅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데다, 흑막에 가려진듯한 그들의 생활에 소외감을 느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자란 세상과 다른 곳에서 살고 있으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쉽게 그려지지가 않는다.
 그나마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 익혀놓은 삶의 잔기술 혹은, 생존본능 마저, 풍요의 세대에게는 흉이 된다. 그래도 오래서 있으면 정강이 뼈가 바스라지는 것만 같은 '아줌마'들은 엉덩이를 들이밀고 빈자리를 차지하고, 아저씨들은 누가 보든 말든 편한대로 옷을 흐트러뜨린다.




 이 모든 것에서 밀려난 노인은, 이제 지하철에서 역정을 내는 것으로 겨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들은 전기가 존재하지 않던 세상에서 자라나 별천지에 살고 있다. 젊었을 적에는 어른을 공경했고, 나이가 들면 당연 '늙어서 유세' 떨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금속보다도 냉혹한 현대사회는 그들을 내동댕이 쳐 버렸다. 세월로 터득한 지혜는 01로 이루어진 사회에 아무런 쓸모도 없어졌다. 앓는 배에 무엇이 좋은지, 농삿일은 언제 시작해야하는 건지... 아니면 단순한 사람 이야기라도, 그들이 이제 들려줄 준비가 되어있는 것은 온갖 전문가들에 의해 '구닥다리 민간요법'으로 전락해버렸다. 행여 노인들의 말이 맞더라도, 그들은 믿지 않고 전문가가 '그렇다'해야, 그런가보다 하는 것이 현실이다.



 신체가 헐어버린 그들은 , 풍요로운 내실로 반짝여야하는데, 그 마저없다. 수명은 늘어가고 할일은 없고, 별천지에서 태어난 가족의 어린 구성원들과의 이야기도 통하기 힘들다. 적응하는 어른들이야 있지만, 여유가 있는 사람들 소리고, 대부분은 변화에 맞추지 못한 나머지, 오히려 거대한 닻을 내려 과거에 머무는 쪽을 선택한다. 그럴 수록 마찰은 커지고 의료비만 축내는 사회의 '골칫거리'로 전락해버리지만, 어쩔 수 없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생존력을 잃었다.






 이렇게 복잡하게 하지 않고도, 간단히 요약하자면



 전쟁전-전쟁중-전후_ 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세대와, 전쟁의 상흔없이 태어난 세대가 공존하기 때문에 뚜렷한 차이가 나타난다
. 비빔밥처럼 놀라운 사회다. 그러니 세대간의 갈등이 유별난 것도 당연하다. 동시대에 태어났더라도 사회계층에 따라 전혀다른 경험을 하는데 하물며 시간을 어찌 메울까. 린지네에겐 역사물일 뿐인 일제시대를, 린지의 외할머니는 직접 겪고 산증인으로 '뒷방 노인네'로서 여생을 살아가고 계시고, 부모님은 먹을 것 없던 시절을 지나 지금의 한국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본 현대사의 주인들이다.
 이렇게 살을 맞대고 살아가지만, 세대간의 교류가 별로 없는 지금, 그 위대한 사실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가족으로서의 역이 아닌, 세다와 세대간, 시간과 시간간의 만남으로 서로를 대하면 어떨까?

 [나]의 시간을 [네]게 전해주고, [그들]의 시간을 들으며 서로를 알아가고 이제 '통합 대한민국'을 만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먹고사느라 보낸 시간들을 한데 모으고, 젊은층은 이론서와 전문가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귀중한 삶의 이야기들을 받아들여서,

 차근차근 한국이라는 나라의 목표를 만들어가야하지 않을까...?
 





 마무리하며...


 전쟁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어 '정상사회'로 돌아가는데 100년이라는데, 전후 세대인 부모님을 뒀지만 전쟁과 직접적인 체험은 하지 않은 끼인 세대인 린지네가 한국사회의 고비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부모세대와 극심한 충돌을 하고 있을테고, 그렇게해서 스스로의 생각을 만들어가야할 의무가 있다. 안타깝게도, 정부의 3S정책에 찌들어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을지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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